미술관과 그 친구들

닫힌 블랙홀이 아닌, 열린 매개변수를 기대한다는 것

채은영
솔직히 처음 원고를 제안 받았을 때, 이제까지 공공 미술관에서 일을 한 적도 없고, 심지어 입사 지원서 한번 안 써 본, 1세대 대안공간 출신으로 지역에서 2.5 세대 공간을 운영하는 예술 자영업자가, 남의 동네 지역 공공 미술관의 리노베이션 이후에 관해 무얼 말할 수 있을까 싶었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달리 한 건, 그렇게 공공 미술관이라는 제도와 자본의 경계 밖에서 경험과 생각들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싶어 민망하지만, 살짝 자리를 차지해보니, 너른 이해로 읽어주시길 부탁한다. 올해 가을 작게나마 운영하고 있는 공간의 웹사이트를 새로 만들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다 2016년과 2017년 진행한 <人千始湁美述觀인천시립미술관>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인천시립미술관 논의가 시작되기 전이고, 오히려 지역에 공공 미술관이 없으니 상상의 나래를 펴서 가상의 미술관 프로젝트를 했는데, 실제 인천시립미술관은 2027년 봄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며, 10년 먼저 만들었던 우리의 미술관을 추억했다. 지역 시각문화예술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창작, 기획, 연구, 비평, 아카이브 등등의 여러 구성과 환경에 대해 늘 부재와 결핍을 이야기하는 건 변치 않는 결론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자본과 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적어도 건강한 긴장 관계를 가질 자율적이거나 전복적 활동과 작업들의 시대적 의미를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가 10년전 상상했던 ‘人千始湁美述觀인천시립미술관’은 하드웨어로서 미술관이 아닌, 다층적이고 관계적 미술의 세계관으로서 미술관을 기대하며, 원도심, 신도심, 서울을 동시간으로 연결하는 전시와 비인간으로 공간과 장소를 재해석하는 공공예술, 여성 예술가 구술사와 현장 아카이브로 재구성하는 지역 미술의 역사 연구는 그 가능성에 관한 시행착오였다. 하지만, 오랜 숙원인 만큼 인천시립미술관에 관한 지역 공공 미술관의 역할과 그에 따른 연구와 인력, 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나 공론보단 지역 미술가의 소장품 이슈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아쉽고 역시 상상은 현실감없던 기대였다는 것도 깨닫는다. 여행을 가는 설레임으로 기차를 타고 부산시립미술관의 여러 전시를 보며 큐레이팅의 배움을 경험했던 시절부터, 나름 애정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이제 공공 미술관 하나를 만들려는 인천에 비해, 부산은 훨씬 상황이 나아 보이고 부러울 때가 많았다.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 그리고 아트페어와 갤러리, 대안공간들이 어느 정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부산뿐만 아니라 지역 혹은 한양 컨템포러리 필자는 서울중심의 한국현대미술과 지역 미술의 시공간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한양컨템포러리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의 현상들에서 우리가 매번 마주하는 상황들이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거나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공공 미술관이 강력한 제도와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본을 가지고, 지역 미술의 창작, 기획매개, 연구, 비평, 인력 등의 모든 걸 빨아들이는 강력한 블랙홀이라는 것이다. 실험적이고 시의적인 주제와 작가 라인업으로 가지고, 짱짱한 장비와 세련된 디스플레이 그리고 대중적인 전시와 프로그램, 담론과 이론의 행사들이 백화점 혹은 OTT처럼 쏟아낸다. 심지어 배리어 프리 담론과 실천도 공공 미술관이 얼마나 포용적인지 드러내며 자원을 쏟는, 민간에겐 그림의 떡이다. 기획매개 인력들도 결국 공공 미술관이나 재단에서의 활동을 위한 경험과 역량의 시간을 감내하고, 비수도권에서 비서울에서 인서울을, 민간에서 공공을, 계약직에서 정규직의 사다리를 반복한다. 공공 미술관으로 수렴되는 인력들의 욕망과 소망을 이해하더라도, 작가들의 레지던시처럼 시작 경력으로 커리어 크레딧으로 작동되는 것도 점점 강화된다. 오랜 시간과 노력, 인력이 들여야 가능한 아카이브와 연구 출판에선 그 격차가 더 커진다. 단기 공공 기금에 의존해야 하는 독립 기획자나 작은 민간 공간과 달리, 이제는 모든 당대적 예술의 이슈와 담론은 공공 미술관과 아트 페어로 가기 위한 빌드업처럼 느껴진다. 최근 흥미롭게(?) 알게 된 건, 공공 미술관에서 아카이브 관련 이슈와 방법을 선점하면서 많은 행사와 전시가 열리고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부산의 대안공간 섬이나 대안공간 반디의 자료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로 들어가거나, 인천 부평 여성 노동 미술의 중요한 자료들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조사-연구-비평 지원사업(2022-2023)으로 수집되고 연구된다는 것이다. 공공 미술관 사이에서도 제도와 자본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속도의 문제인지 마냥 아카이브와 연구의 의미를 긍정하기엔 애매하다. 무엇보다, 지역 공공 미술관의 아카이브가 결국 소장품이나 작가의 미술사적 위상과 신화적 의미를 더욱 견고하고 스펙타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예술가 작품과 작업, 활동의 맥락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입장에선 의미를 더 풍부하게 하고, 보존 가치를 다양하게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키비스트가 아닌, 기획자로서 아카이브에 관심을 두었던 건, 그렇게 제도적으로 역사적으로 의미적으로 완성형으로 가고 있는 미술사가 아닌, 가려진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기 위한 큐레이토리얼의 방법론으로서 아카이브, 아카이빙, 아카이벌이란 개념과 실천 사이를 헤맸던 거 같은데, 공공 미술관에서의 아카이브는 다가갈수록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마주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시설이 리노베이션 된다는 건, 새로운 미션과 새로운 프로그램과 활동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러하다면, 지역 공공 미술관이 닫힌 블랙홀로써 모든 자원과 활동을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적어도 지역 시각문화예술 생태계와의 관계를 재구성할 부분도 함께 고민해주길 바란다. 물론 이런 기대가 규모의 미술관 조직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없는 지역 밖 외부인의 입장이라 매우 조심스럽고, 지역마다 특수성과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발견하는 공통성과 유사점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이미 눈치 채고 있지만 탈-미술 할 수 없어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예술은 자본과 제도에 매우 취약하며, 경계의 긴장이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프리즈 페어에 공공 미술관과 중앙 기관들이 들썩이는 걸 보면서, 결국 미술관 소장품과 아카이브, 컬렉터의 소장품을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독점적 시장구조와 플랫폼 자본주의를 비판하듯, 지역 시각예술 안에서 공공 미술관도 거대한 위계의 블랙홀 같은 플랫폼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기보단, 지역과 공동체의 다층적 접근과 해석에서 연구하고 아카이브하고 전시하고 프로그램으로 접속하고 연결하는 매개 변수가 되길, 적어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경계의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서 나오는 상생이나 공존, 협력과 같은 납작한 용어와 개념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 그 안에서 지역 미술과 지역 예술가를 결코 연고로서의 당위나, 형식적 토크니즘이 아닌, 진동하며 풍부하게 자리 잡길 바란다. 이러한 기대는 인천시립미술관에 거는 바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부산에서 먼저 잘, 해준다면 좋겠다.
채은영(독립기획자) 통계학, 예술경영, 미술이론을 공부했고, 도시 공간에서 자본과 제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가진 시각예술의 상상과 실천에 관심 많은 인터-로컬 큐레이터다. 갤러리 보다, 대안공간 풀, 우민아트센터를 거쳐, 트랜스-로컬리티와 생태-정치 주제의 리서치 기반 '임시공간'과 독립출판 '임시프레스'를 운영하는 예술 자영업자다. 이동석 전시기획상(2013)을 수상했고, 쌈지스페이스, 경기창작센터,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다수 전시와 공공 프로젝트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