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미술관, 그리고 큐레이터십
김재환
1. 미술관의 새로운 정의, 미술관의 공공성을 선언하다.
2021년 6월로 기억한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하겠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는데, 내가 살고 있는 창원도 마찬가지였다. 창원 시민이자 미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이건희 미술관을 꼭 유치하겠다는 선언들이 영 거슬렸고, 결국 이를 참지 못하고 SNS에 흔적을 남겼다. 지자체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나 이건희 미술관을 만들어 달라고 맹목적으로 요구하지 말고, 지역 자체적으로 미술관 설립 비전을 세우고 지역 특성에 맞는 미술관을 우선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짧은 기술로 인해 유명미술인과 유명미술관 유치를 통한 지역미술관 생존전략과 관련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부산의 사례를 보자면 유명미술인은 ‘이우환’, 유명미술관은 ‘퐁피두센터’로 치환될 수 있겠다. 미술사회적 의제와 관련된 원고청탁은 딱히 거절하지 않는 터라 큰 고민 없이 동의를 했는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SNS의 이 흔적이 사뭇 원망스러워지고 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남겨 이런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원고청탁을 수락할 때만 하더라도 별로 어려울 게 없어보였다. 이건희미술관, 이우환공간, 퐁피두센터 등과 같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미술관 설립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어서 비판적 진단만 하면 되는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관의 내·외부적 속성과 역할 그리고 큐레토리얼(curatorial)을 고민할수록 그리 간단히 답할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혼돈의 글쓰기가 되어버렸다. 지금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래서 원칙을 살펴보기로 했다.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 원칙으로의 회귀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다. 정확히는 국제박물관협의회에서 제정한 ‘박물관 정의’와 ‘박물관 윤리강령’이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한 종류이기에 박물관에 대한 규정은 곧 미술관에 대한 규정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미술관의 영어표기가 Art Museum 또는 Museum of Art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침 2022년 국제박물관협의회(이하 ICOM)는 프라하 총회에서 박물관·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의결했다. ICOM에서 규정한 박물관 미술관의 새로운 정의는 총 세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1. 박물관(미술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다.
2. 박물관(미술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3. 박물관(미술관)은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1)
미술관이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라는 정의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여서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두 번째 문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와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미술관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말은 연령, 계층, 장애/비장애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고 즐길 수 있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포용적이라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와 연결된다. 세 번째 문장에 담겨있는 ‘공동체의 참여’, ‘윤리적, 전문적’,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을 생각해보면, 공동체가 박물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객체가 아니라 운영의 적극적인 파트너로서 공동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관의 방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큐레토리얼(curatorial)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방향에서도 나타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2019-2023)>에서 박물관·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박물관·미술관의 공공성 강화, 전문성 강화, 지속가능성 확보의 3대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2) 미술관의 방향성 중 하나로 공공성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양지연 교수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공공성’의 일반적 개념과 ‘박물관·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종합해볼 때, 접근 가능성, 법제도적 공공성, 공익성, 개방성, 다양성/포용성, 참여적 민주성, 비영리성을 박물관·미술관 공공성의 중요개념으로 볼 수 있다.”3) 즉 미술관에서의 공공성 실현은 ‘미술관이 얼마나 접근성이 좋은가. 공익적이고 개방적인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가. 비영리적인가.’에 대한 답변에 달려있다. 전문성과 지속가능성 역시 제시된 바와 같이 미술관 운영의 핵심이다.
2. 열린 미술관의 지속가능성, 큐레토리얼 전문성을 필요로 하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기반 공립미술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미술관의 경우 유무형의 유산 즉 소장품을 중심으로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지만, 새롭게 설립되는 동시대미술관의 경우는 열린 공간, 다양성, 지속가능성, 공동체 참여, 공공성 등이 미술관 운영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계적인 작가’, ‘세계적인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미술관을 설립하려고 하는 최근의 노력은 ICOM에서 정의하고 있는 미술관의 방향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흐름이 존재하는 이유는 미술관 내부 논리와는 무관한 다른 논리가 개입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입장에서 미술관은 관광객 유치와 부가적 경제효과, 지역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유혹적인 아이템 중 하나다. 세계적인 작가나 기관의 명성에 힘입어 미술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입장은 이런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부산시나 인천시가 퐁피두센터를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입장의 연장이다. 하지만 미술관 종사자라면 이러한 입장에 반성없이 쉽게 동조하면 곤란하다. ICOM에서 규정한 윤리강령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미술관 종사자는 ‘전문성’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문성은 미술관 정의에 따른 학예업무를 실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렇다면 미술관 종사자는 미술관 설립 역시 미술관 정의의 취지를 따라서 이뤄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한다.
설립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시의 경우도 미술관 정책 방향과 결을 맞출 필요가 있는데, 사실 이를 잘 실현한 전시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 기억나는 건 2020년 9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조금 잠잠해질 무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되었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전시는 반려견이 사람들과 함께 미술관에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시이자 프로그램이다. 거의 대부분의 미술관은 반려동물 입장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 이 전시는 아마도 개를 미술관 손님으로 맞이한 한국 최초의 전시가 아닐까 싶다. 개를 관람객으로 맞이하는 전시이기에, 인간이 아닌 개의 시선과 성향을 고려해야했고, 그 결과 기존 전시와는 다른 형태의 공간이 펼쳐졌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미술관에 개를 초대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는 흥미로운 전시였다.4)
2021년 11월 홍콩에 M+라는 새로운 미술관이 개관했다. 2007년에 미술관 기획안이 나온 후 14년이 지나서야 개관한 M+는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미술관 중 하나다. 65,000㎡ 규모의 미술관에 33개 전시장(총17,000㎡)을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도 대단하지만, 14년 넘게 장기적인 계획과 과정을 거쳐 정밀하게 미술관을 설립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에서 국공립미술관이 이러한 소요시간을 견디며 설립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다. 아시아적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특징으로 하는 홍콩 도시의 성격을 미술관 정체성에 반영해 ‘시각예술’, ‘디자인과 건축’, ‘영상’이라는 세 영역을 중심으로 미술관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랜 준비 기간은 큐레토리얼 연구의 시간을 확보하게 되는데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기본 토대인 Modern Art를 연구하고 Contemporary Art를 담아내는 뮤지엄 이상의 뮤지엄(more than a museum)을 운영하겠다는 선언이 그 증거다. 그 결과 미술관 명칭을 M+로 정했다고 하니 미술관 설립과정의 교과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소장품 정책이나 전시의 영역에서 세계적인 작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술관의 방향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기에 딱히 문제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좀 더 지켜봐야하겠지만 M+은 미술관 내부 논리를 바탕으로 외부 논리도 적절히 잘 적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3. 디렉터십의 몰락, 큐레이터십 강화로 극복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작가의 이름을 빌린 미술관, 세계적인 미술관의 분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등 이름과 권위에 의존해 미술관을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태도는 사유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의 성공이 마치 영화계 전반이 활성화 됐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BTS같은 세계적인 아이돌 공연을 유치하는 것으로 곧 지역 음악계가 활성화됐다고 판단하는 것과 동일하다.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미술관 설립이나 운영 방식은 미술관 내부 논리에 따르면 네모난 세모처럼 일종의 형용모순에 가깝다. 실제로 최근 미술관 관련 담론은 미술 생태계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사회의 공동체와 적극적으로 상호 소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술관과 공공성의 관계를 큐레이터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10년은 훌쩍 넘었다.5) 단기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문화 도구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시민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일종의 문화 플랫폼으로 미술관에 존재해야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그런데 지역의 공립미술관은 이 변화의 바람을 여전히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자체장에 의해 일시적으로 임명되는 임기제 미술관장의 숙명 때문인지 대부분의 미술관장이 미술관의 장기 과제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미술관장의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큐레이터들에게 스며들어 당면한 전시를 멋지게 연출하는 것이 주요 성과의 척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펙타클한 작품을 선보이고 유명한 작가를 섭외해 전시실을 꾸며 놓으니 얼마나 힙해보이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전시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수준에서 연계 프로그램이 개발되다 보면 미술관은 정말이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성과 소멸의 무한 반복을 거듭할 뿐이다. 미술관 전시는 갈수록 대형화되고 시각적 자극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공간연출을 위한 공사 규모는 커지고 이에 따른 산업폐기물의 생산은 거대해지고 있다. 뽐냄은 자연스럽고 반성은 부자연스럽다.
이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결 방법은 결국 전문성의 복원이고 큐레이터십의 강화인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전문성이라 함은 미술작가를 잘 알고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 섭외력이 뛰어난 이런 차원이 아니다.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양을 바탕으로 소장품 수집, 연구, 전시, 교육/배움을 유기적으로 풀어낼 때 큐레이터십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 외부의 논리를 고려해야하는 현재 한국의 디렉터십으로는 일회적 순환 고리를 반복하는 미술관의 운영의 휘발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나마 미술관 내부 논리를 강조하고 이를 실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큐레이터들이 큐레이터십을 강화하는 것이 미술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유일한 희망이지 않을까 싶다.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 1) 장인경, 「ICOM의 박물관 정의 개정 경과, 의의, 쟁점」, 『박물관·미술관 정책의 전환은 가능한가? : ICOM의 뮤지엄 정의 개정과 한국의 박물관·미술관 정책』, 한국박물관협회, 2022. (↑)
- 2) 문화체육관광부,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2019-2023)>, 2019. (↑)
- 3) 양지연, 「박물관「미술관 공공성의 정책적 의미와 ‘우수 박물관「미술관 기준’의 필요성」, 『박물관·미술관 정책의 전환은 가능한가? : ICOM의 뮤지엄 정의 개정과 한국의 박물관·미술관 정책』, 한국박물관협회, 2022. (↑)
- 4) 김재환, 「코로나가 쏘아올린 모두를 위한 미술관」, 경남메세나, 경남메세나협회, 2021. (↑)
- 5) 경남도립미술관은 2012년 한국큐레이터협회와 함께 ‘공론장의 구조변동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당시 공공예술, 공공성, 접속의 미학, 컨템퍼러리, 미술관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큐레이터협회 소장품정책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관과 지역 공동체가 공공적 관점에서 어떻게 연동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가능성의 실현이 미술관의 존재의 이유라 생각하고 있다. 저서로는『비판적 예술이론의 역사』(공저)가 있으며, <리뷰하다>, <한국현대미술로 해석된 리얼리즘>, <대만현대미술전>, <폐허프로젝트>, <도큐멘타 경남 I – 기록을 기억하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도큐멘타 경남 II – 형평의 저울>등을 기획하였고, 제5회 이동석 전시기획상(2012)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