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그 친구들

어느 지역의 지형도

최하얀
일전 한 칼럼에서 나는 나와 같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수식하는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라는 말이 도리어 얼마나 이 자리의 취약함을 반증하는 말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 앞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수식어가 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거나 혹은 만들어야만 하는 역설을 드러낸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글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살아가는 도시 ‘광주’를 수식하는 말 또한 정말 다양한데 빛의 도시, 예향의 도시, 민주화 운동의 도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 같은 것들이다. 그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게 광주에는 수많은 문화 예술 인프라가 존재한다. 그뿐 아니라 시·구청과 국공립 미술관, 지역 문화 재단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공간적, 물질적 지원 제도가 마치 남도의 붉은 땅만큼이나 ‘풍요로운’ 이 지역에서 자리의 ‘취약함’을 이야기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글은 독립기획자이자 국공립 미술관의 안내 공무직이라는 이름을 통해 내가 받을 수 있었던 다양한 수혜들을 짚어내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이야기가 스스로의 ‘취약함’을 발화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수많은 이름들을 등지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뒤이은 논의는 ‘배부른 소리’ 그 뒤편에서 순간순간 은폐되어온, 지역의 취약함을 발화하려는 시도이다. 광주는 매해 특정 시기에 맞추어 부풀어 오르고, 다시 쪼그라들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공적 자원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공공 예술기관은 내/외부인들을 지역으로 불러 모으는 장의 역할을 한다. 그러한 도시의 풍경 너머, 나는 지역과 도시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구조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이것이 여러 공적 수혜와 지원들이 ‘AI 첨단 도시’와 ‘예향’이라는 모순된 지향을 동시에 선전하는 영역의 뒤편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어느 지역의 안티 새해가 시작되던 시기, 한 백화점에서 신진 큐레이터를 위한 전시 공모를 진행한다는 공고가 업로드되었다. 2023 광주비엔날레를 앞두고 ‘전 세계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담론에 대응하는 지역 문화의 미시담론을 환기시키고 광주와 전남의 미술 플랫폼을 다각화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는 단서가 함께였다. 수상은 1등부터 3등까지 이어졌는데, 그중에서 전시 기획 실현의 기회와 1000만 원의 전시 예산이 1등 수상자에게 주어졌다. 전시를 시현하게 될 신진 큐레이터와 함께 할 작가들의 작업 또한 백화점에 자리한 상업 갤러리의 특성상 판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이 함께였다. 공고를 살펴본 뒤 ‘빛의 도시 광주’라는 타이틀에 맞추어 미디어 아트를 주 지원 대상으로 삼는 지역의 지원 제도와 시설 인프라, 그 금액에 비례하여 쏟아지는 공공 기관의 관심에 대한 반문을 던져보기 위해 몇몇의 회화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기획안을 제출했다. 그 주제는 <안티 비엔날레>였다. 지역의 미술사를 다루는 데 있어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던 1995년, 안티 비엔날레의 성격으로 망월동에서 진행된 「95 광주 통일미술제」를 빼놓기는 어렵다. 그때의 광주를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2018)에서 광장 구조물의 가장 위쪽에 전시된 만장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95 광주 통일미술제」는 전시를 이끌었던 화가 강연균이 96년도에 광주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되면서 지역 내 안티 담론으로서의 지속적인 동력을 얻지 못하고 1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광주비엔날레는 5·18, 광주학생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서 포착되었던 ‘광주 시민의 뜨거운 열망’과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국제적 예술행사의 차원에서 이뤄낸다는 목표를 안고 시작되었다.1) 따라서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가치를 국가, 지역, 문화 등의 수많은 「경계를 넘어」 감각 가능한 맥락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유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은 광주비엔날레가 탄생과 함께 껴안게 된 문제이다. 예컨대, 1980년대 급부상한 ‘예향’이라는 광주의 새로운 정체성이 지역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 당대 정부와 도시 내 유력 세력의 합작에 의해 급조된 개념이었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2) 14회 광주비엔날레의 3관 <조상의 광륜> 전시 서문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향 광주’가 세심한 기획 차원에서의 변별 없이 언급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시 기사문에서 사용되었던 ‘아시아의 중심’의 ‘세계화’를 향한 열망과 ‘지역성’에 대한 복합적인 태도를 지금 광주의 ‘AI 첨단 도시’와 ‘예향 광주’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적 괴리에 대입해 살펴보자. 해당 지점에서 꾸준히 발생하는 가히 분열증적 태도란 단순 광주비엔날레의 것만은 아니게 된다. 「95 광주 통일미술제」의 반대 급부에서 질문을 던지는 안티 테제로서 <안티 비엔날레>가 작동했던 것처럼, 더 나은 지역 미술 담론을 위해 이미 주어진 조건을 되살피는 방법으로의 ‘안티’는 여전히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장동콜렉티브(김소진, 이하영)는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인해 취소된 2020 광주비엔날레의 기획과 작가진 구성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향후 개최될 비엔날레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전시 보고報告」전3)을 기획했고, 2023년 대안공간 산수싸리 소속의 김한라, 서혜민은 광주의 80년을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세대에 주어진 5·18의 기억에 대해 다시 고려해 볼 것을 요구하는 「하나에서 열의 초상으로」4) 전시를 기획했다. 5·18 정신이나 광주비엔날레가 다루는 현안들을 공공 예술의 장에서 발화하는 몫이 비단 기관에 한정되지 않고, 민간 예술 단체나 독립기획자들에게까지도 주어져 있는 양상을 보였다. 만약 이처럼 제도권 미술의 바깥에서, 주어진 조건을 다시 되살피는 ‘안티’가 재소환 되고 있다면, 지역의 공공 미술기관은 제도권 안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의 기획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더 활발하게 이야기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느 지역의 국공립 미술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광주에는 다양한 국공립 미술관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의 정체성과 역할을 구분하는 근거는 주로 소속 부서에 의해 마련된다. 각 기관의 지향은 기획 전시의 구성, 교육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모집하는 레지던시 작가의 매체나 작업 주제와 같은 미술관 전반의 기획을 통해 드러나는데, 그중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체성과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연간 전시 커리큘럼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을 기점으로 타 기관에 대비하여 광주시립미술관의 전시 커리큘럼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①5·18, 혹은 이와 관련된 가치를 다루는 전시와 ②호남 지역의 중견 작가들(배동신, 양수아, 허달재, 강용운, 임직순 등)을 조망하는 내용의 전시가 매년 1~2회가량 고정적으로 기획된다는 것이다. 문체부 소속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광주시 소속이지만 미디어 아트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광주미디어아트 플랫폼처럼 여타 다른 전시 기관과는 다르게 광주시립미술관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로서, 이미 주어진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 5월 17일, 광주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전시 「김호석 : 검은 먹, 한 점」5)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김호석 작가님과의 대담이 마련되었다. 전시에서 김호석 작가는 바닥에 쏟아진 꽃이나 생선의 머리 등을 화폭에 담아낸 은유적인 작품을 선보였고, 이에 광주시립미술관은 그의 작품이 시대적 아픔을 반영하는 상징성을 띄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담은 작가의 작업 세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당장 내일로 다가온 5월 18일을 환기하며 더 많은 작가들이 관련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자료를 공개해달라는 당부를 마무리로 30분가량의 현장 질의가 이어졌다. 현장의 분위기란 세미나실 가장 앞줄부터 뒤 출입문까지 미술관 관계자와 나이 든 사람,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사람들의 무리가 인원에 비해 부족한 자리 탓으로 간이의자 위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복잡하고 기묘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 시민의 질문은 나에게 있어 그 장면을 지역의 예술과 ‘절대 광주’의 정신적 기치 사이에 꾸준히 발생하는 간극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장면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아마도 김호석 작가가 한용운의 <모기>(1936)라는 시에서 차용한 모티프를 바탕으로 제작한 <모기는 동족의 피를 먹지 않는다 1-2>(2023)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우회하여 표현하는가? 다시 커리큘럼으로 돌아가서, 5·18 정신과 호남의 중견 작가들을 함께 다루는 기획이 과연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매 해 반복되는 민주·인권·평화 전시가 사람들에 애도의 감각을 불러 일으킴으로 정신적 가치를 전달한다면, 호남의 작가들을 호명하는 아카이브 전시는 역사, 혹은 신화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기획된다. 물론 지역의 작가를 조명하는 역할은 모든 지역의 국공립 미술관에 주어진 사명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이것이 5·18 정신과 함께 놓일 때 발생하는 독특한 맥락을 살펴보고 싶다. 질문자의 질문 내용은 절대광주 정신과 재연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질문은 역사화된 절대 정신에 예술적 변용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태도는 계승되어야 마땅한 가치를 도리어 고립된 것으로 만드는 역설적 간극을 발생시킨다. 해당 질문은 21년 5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발생했던 하성흡 작가 작품 검열 사건과 더불어 아이러닉한 상황을 연출했다.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 하성흡의 수묵으로 그린 열사의 일대기」6) 전시를 앞두고 국립아시아문화원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홍보 포스터에서 작품의 일부였던 '전두환을 찢…'이라는 문구가 인위적으로 지워진 채 업로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직원의 단순 실수”라는 아시아문화원 측의 입장과는 달리 사건의 조사를 맡은 공동 조사단은 2개월 여 간의 조사 끝에 아시아문화원 직원의 검열과 삭제 지시, 광산구청의 검열 수용, ACC의 사실상 검열 동의 행위가 이번 사건의 주요 요인이었음을 발표했다. 이 두 장면은 각각 지역의 절대정신을 ‘사수’하거나 ‘삭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역화’와 ‘검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 특정 사건에 대하여 그 장소를 불가침 영역으로 만드는 것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부분을 임의적으로 삭제하는 행위는 서로 먼 곳에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느 지역의 지형도 앞서서 살펴본 이야기들은 사실 사적 자본이 투입된 어느 백화점과 안티 비엔날레, 개인에 불과할 뿐인 익명의 질문자와 시립미술관의 커리큘럼을 병렬해서 보는 식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공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많은 자리들이 ‘안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의 다종다양한 의견들을 선순환 하기보다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거나 밀어내기에 급급했다고 판단한다. ‘절대정신’의 맥락과 의도로부터 벗어난 것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 무력하게 하는 식의 오래된 작동 방식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특정 문구를 삭제하는 일이 어느 직원의 개인적 판단 하에 이루어졌다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거나 납득될 수 있는 말처럼 여겨진 현실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층위의 문제들은 기관의 어법이나 효율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며, 제도권 바깥의 예술 영역, 더 나아가 개인의 영역에서도 종종 발생하곤 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역의 미술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도리어 이만큼이나 무수한 균열과 분열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지형들을 들추어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광주 공공기관은 주관 기관에 따라 첨단과 계승이라는 얼핏 상이해 보이는 목적에 따라 분열증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폐쇄성과 5.18정신의 중핵에 있다고 보이는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검열장치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근 5년 간의 예술 지원제도가 길러내고자 했던 ‘지역 청년 예술가’들은(요즘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세계화’를 완수해낼 역군으로도, ‘지역성’의 계승자로도 설득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제도권을 비판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안티’는 매 해 등장한다. 이것이 눈으로 보기에 한없이 형편없고 울퉁불퉁한 지형도라 할지라도, 이들의 완충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국공립 미술관이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하얀(광주모더니즘) 아버지의 고향인 광주광역시로 이주한 뒤 독립연구공동체 광주모더니즘에 소속되어 독립기획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삶의 터전이 된 광주광역시의 도시적 특성에 주목하고 대한민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소수자들 : 공장여성노동자, 성매매 종사자, 넝마주이들의 서사에 귀 기울이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전시로 풀어내는 연구 및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