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나름 분명해서 전시에 그걸 담던 시절과 전시로 담아낼 ‘지역’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지금의 사이에서의 방황기
진세영
0.
시에서, 그러니깐 부산시립미술관(이하 ‘시립미술관’ 혹은 문맥에 따라 ‘미술관’)의 경우 부산시에서, 운영한다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지역민, 부산시민의 문화예술 향유에 기여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이 먼저 있다. 이로부터 전시에서는 종종 부산이 이야기 되어왔고, 여태껏 말해진 것보다 앞으로 더 많이 말해질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부산을, 지역에 대해서, 전시로 말해야 하는 상황 마다마다, 어떤 의미로 부산을 말할 것인지, 전시에 따라 소재나 주제와 방식만이 달랐다. 앞으로도 이 차이들만이 반복적으로 무한할 것이다. 역대의 전시들을 돌이켜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작고한 부산작가들에게는 시기에 따라 발견되는 공통적인 경향이 있다거나, 그리고 지금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거나. 다른 차원으로는 도시 부산이라는 공간, 장소가 어떤 곳인지를 주제화시키기도 한다. 훗날 전시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면 이와 같은 지역을 다루는 유형에 따라 일차적인 정리가 될 것이다. 비단 부산에서만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대구에서, 대전에서도, 광주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니깐 미술관이 그냥 미술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립’미술관이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어떤 곳은 ‘도립’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애초의 기획 단계에서, 지역이란 요소는 그렇게 전시에서 전제조건으로 작동한다.
기억을 하나 꺼내보자면, 나는 그때가 어떤 전시였던 것인지 이제는 헷갈리는데, 지난 몇 년 간 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유독 자주 꺼내지던 한상돈의 <방직여공>(1954년)을 또 하루 마주하던 날에, 이 그림이 왜 자꾸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것 말고는 없어서 그렇겠지(그러나 무엇이 없다는 것인지는 그 생각의 주체인 나조차도,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하는 넋두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역사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명감이, 부산을 이야기해보겠다는 의지가, 나에게서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할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는데, 옆에 있던 노부부 관람객이 이런 그림도 다 있냐며 신기해하는 모습 보면서, 그림 앞에서 신난 어린아이처럼 조방 앞에 대해 회상하는 대화 앞에서, 그냥 내 고민을 멈추기로 했다.
그러니깐 문제가 있다면, 나의 냉소와 무기력일 뿐이다. 매번 이런 식으로 나는 이 지점을 유예시켜왔다. ‘절망 속에서도 예술이란 꽃을 피워내었다’던 한 전시의 클라이맥스 서사 앞에서는, 어떻게 아직도 이런 수사를 쓸 수 있냐며 아연실색하던 나와 달리, 감동 받던 친구들 얼굴들, 표정들 바라보면서 그랬고, 또 하루는 김윤민 <나부>(1960년대) 그림 앞에서, 발가벗은 사람이 있다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 내던 어린이 옆에서 그랬다. 부산시립미술관이 부산시립미술관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런 장면들 때문일 텐데, 나만 완전히 젖어들지 못할 뿐, 그래도 행복해하는 사람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볼 수 있어서 그 점만큼은 좋다. 전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가 아니라, 나도 그들처럼 전시를 보면서 기쁘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내게 미술관 말고 병원을 가보라고 말해주는데, 병원은 진작부터 이미 다니고 있고, 따지자면 전시 보다가 생겨난 문제라 미술에서 해결해야하는 게 맞다.
하여튼 미술관에서 내게 서서히 드리워지던 그림자는 방황으로 이어지는데, 미술관 화장실 가는 길목의 도서자료실로 향하게 만들었고,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그곳에서 잠깐씩 기쁨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김광업의 전시도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또 거기에 마침 석도륜이 쓴 글이 있어서 좋았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김종식 작품은 전시에서 볼 수 있을 때마다 나름대로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는데, 도서자료실에서 도록 몇 권을 살펴보게 되면서 나중에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의 도장을 알아보기도 한다거나. 지금 하고 있는 주제전은 이전 도록을 살펴봤을 때, 어떤 학예사가 담당했을지 (그 학예사와 일면식은 없지만) 가늠이 된다거나. 하는 그런 순간들. 이 순간들을 어떻게 엮어서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 애초에 이 순간들을 엮어 전시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도 불확실함. 내 실력과 상태로 비평도 안 됨.
김강석, 이시우, 김창협, 이용길, 옥영식, 이동석, 그리도 또 더 나열할 수 있을 이름들(물론 이 이름들은 단숨에 한 줄로 말해지기엔 큰 무리가 있다), 그 이름들 곁에 달라붙어 있는 생각들이라도 잠시나마 붙잡아보면 다른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미술이 품어야 할 부산에 대해서, 혹은 부산미술이라는 것이, 이들에게서도 체계적으로 사유되지는 못했다. 이들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는 포기를 한단 것이다. 포기 하지 않은 동시대인은 아직 많기 때문이라 믿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포기해야 다른 소리도 하면서 다양성에도 기여하고, 엔트로피를 맞출 수 있다.
하여튼, 이런 식의 고백으로 말을 떼기 시작하는 것, 즉 비평이란 측면에서는 실패이자 무능함의 전형인 동시에 일종의 도피 행위임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러지 마라고 당부하기 위해서이다. “강을 알기 위해서 굳이 강물을 다 마셔볼 필요는 없다.”1) 다만 하버드대학교 통계학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강물 마시던 사람은 하나 정도 있어왔다.2) 내가 그러고 있으니 당신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내가 죽기 전까지 이 강물을 마시진 못한다. 예컨대 강선학의 최근작 두께를 보라. 그리고 이 문장을 입력하는 순간에, 기가 막히게 그의 최근작은 또 한 번 업데이트 되었다. 그러니, 이 글의 ‘진정한’ 독자는 어쩌면 당신이 아니라, 내가 죽은 이후에 강물을 이어서 마시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고, 그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이 글을 발견한다면 이어서 마시면 된다! 문제는 계속 마셔야 하는데, 중간에 참지 못하고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처럼 한번 씩 뱉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인데, 크나큰 유실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잘 피해가라. 나는 일단 울고, 눈물 흘린 만큼 얼른 더 마시자고 남겨둔다. 이 글은 미술관이 지역을 담는 방식이 특히 두드러지는 기념 및 특별전시를 사례로 살펴보면서, 잘 됐을 때는 어떻게 잘 됐던 것인지, 잘 안 됐을 때는 무엇이 문제였던 걸 살펴본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는 것 같다.
1.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은 세 가지 전시를 개관전으로 삼으며 문을 연다. 그중 하나가 《부산미술재조명전-집단활동으로 본 부산미술의 정체성》이다. 해당전시에서는 193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부산에서의 미술그룹과 단체전 등을 모아서 살펴보며, 시립미술관으로써 지역작가를 최대한 수용하고, 부산미술의 특성을 살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당시 함께 개최된 다른 두 전시가 《미디어와 사이트》 그리고 《자매도시 소장품전》임을 고려했을 때, 미술관의 첫 단추가 얼마나 야심차게 채워졌는지는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미술관은 뉴미디어라는 장르/매체가 갖는 첨단적 감각, 국제적인 협력 관계를 포함한 규모 있는 전시, 그리고 도시 부산의 고유한 미술세계, 이렇게 세 가지로 시작했다. 여기에는 분명 중앙과 대비되는, 그간 누적된 부산 미술계 특유의 결핍 정서가 기저에 깔려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미술사의 부재, 문화예술 향유 및 소통의 공간 부족, 그리고 그에 따른 매체와 장르 등에서 나타나는 낙후성 등을 미술관 건립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3)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관의 첫 발자국으로 남긴 부산은 중앙에 대비되는 지역으로 변방이자 주변부로의 부산이다. 이와 같은 일종의 결핍, 피해의식은 시립미술관 개관을 통해서 이제부터 하나둘씩 극복될 수 있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내가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결핍과 피해의식을 실제로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판단된다는 것이다. 그간 특정한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서 진행된 적 없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파편적으로만 이루어지던 부산미술에 대한 연구가 미술관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전시로까지 이어져 나왔다는 점, 특히 구체적으로는 부산에서 발견되는 동인 및 그룹 활동의 양상을 통해 미술사를 구성하고 살펴본다는 관점이 기획을 통해 형성되고, 그에 뒷받침 되는 내용들로 전시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25년의 시차를 둔 지금의 보아도 놀라운 풍성함이다. 이제 막 부산미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에게도 그 전시는 중요한, 교과서 같은 텍스트라 말할 수 있으니깐.
그러니깐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4) 미술관이 품어야 할 작가들이 분명했고, 전시로 선보여져야 할 작품들이, 또 그들의 이야기가 빛을 내며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미술관이란 공간이 생겨난다 했을 때, 그곳에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그것에 답할 수 있었다. 이는 김남시가 지적하듯, “러시아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1902년에 출간한 팸플릿 제목이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였던 것”과 일맥상통한 지점이다.5) 미술관을 기반으로 공동이 추구하는 꿈, 이상과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열망의 실천이 있던 때. 살아본 적도 없는 그리운 시대. 그때가 쉬웠을 것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선명했던 때였다.
2.
10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미술관은 내가 겪는 방황과 포기와 유사한 태도, 행동을 드러냈지 않나 싶다. 지금 다시 살펴보아도 아찔해진다. 10년 동안 미술관은 동시대미술의 경향성에 주목하거나, 지역미술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이어가고, 도시와 일상사에 대한 주제의식을 짚어나갔다. 그런 중에 아마 여러 물음이 누적되었을 것이다. 중앙이 가지고 있는 미술사를 부산 역시 가진다고 했을 때, 그것은 같은 위상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혹은 역사를 구성함에 있어 어떤 방법론을 채택할 것인가? 등과 같은 것들에서부터, 부산은 어디서부터 혹은 어떻게 해서 부산인가? 부산작가는 누구인가? 미술관은 어떻게 부산을 담아낼 수 있는가? 등등. 해야만 했던 것들, 할 것들이 하나둘씩 수행되면 수행될수록, 어째서인지 선명했던 것들이 서서히 불투명해진다. 두 가지 전시가 그렇게 여러 난점을 끌어안고서 열렸다. 2008년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시 《Art in Busan 2008, 돌아와요 부산항에》(이하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부산 미술 80년, 부산의 작가들》이다.6)
먼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미술관이 작가들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기묘한 제목인데, 당시에는 멋진 톤으로 외쳐진 듯하다. 부산에 돌아와 달라는 미술관의 부름에 응답한 작가 및 대학교 학생팀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부산을 고향으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을, ‘부산이’ 불렀으니, 여기로 (돌아)온 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부산을 기입해왔다. 이것은 분명 어떤 문제다. 첫째, 전시서문에서는 부산미술이 갖고 있는 각별한 인연 즉 예술생태계 인적 요인에 대한 부분을 과시하는 편이지만, 미술관의 처지는 작가들로 하여금 부산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해야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미술관의 개관 때와는 전혀 달리, 특별한 피해의식도 열등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이유다. 아무도 안 돌아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돌아온 이들은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두 번째 문제는 작가들을 호명한 주체가 부산시립미술관이라는 점에서 모두다 부산을 갖고서 미술관으로 들어왔다는 부분인데, 미술관의 내부에 걸린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곧 부산 곳곳의 지명들, “전포동”, “부산고교”, “해운대”, “자갈치 시장”, “오륙도”, “동백섬” 등으로 빼곡하다는 것이다.7) 이러한 광경은 어쩌면 오늘날 ‘콘텐츠’라고 부르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미술이 혹은 미술작품의 어딘가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고 있는 시발점으로 삼아 의심해볼만하다.
전시의 형식 역시 주목해볼만한데, 전시를 “프로젝트”라는 말로 지칭하며, “소통과 토론, 참여와 개입을 통해서 미술관과 도시가 맺는 관계의 지점에서 담론을 생산”8)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깐 여기엔 분명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나’가 비중 높게 고려되어있다. 안 하던 것을 이제는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 만큼, 미술관 밖으로 나가, 부산-정체성-스러운 것을 찾아와서 미술관에 안착시키고, 그 동력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시는 로비, 외벽은 물론이고 미술관 바깥의 장소들, 이를테면 대학교 등에서, 워크숍 같은 것으로도 펼쳐진다. 이 모든 것들이 과정이자 결과이자 전시의 대상이고 전시이다. 어딘가 슬퍼 보이는 이 10주년 기념전시의 풍경은, 이런 방법론을 채택해서, 서양미술사에 한 꼭지를 차지하는 아방가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혁명적인 전환을 만들어냈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는 데에 있다. 물론 당시 참여, 관계자들 사이에서 파이팅은 됐던 것 같다 (추측).
이어서 열린 《부산 미술 80년, 부산의 작가들》은 불안의 기색을 결국에는 차라리 선명하게 고백한다는 점에서 나는 낫다고 보는 편이다, 전경 이미지들은 꽤나 심각하지만 말이다. 담당학예사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이는 어쩌면 잠시 순간적으로(?) 강물을 다 마시려고 했던 것 같다. 전시는 부산 최초의 미술인으로 기록된 임응구의 ‘조선미술 전람회’ 입선연도를 시작점 삼아 80년의 시간을 부산미술의 시간으로 삼는다. 문제는 이때 전시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답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것을 배치하면 저것이 누락되고, 이 관점으로 전시를 기획하면, 저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으로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니 미술관은 있는 대로 모아서 1작가 1작품으로, 단순나열로 배치하길 택한다. 결과는 뻔하다. “아무런 특성도 드러나지가 않는 백화점식 나열”로 해당 전시를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어 모인다. 9)
이와 같은 상황은 대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극도로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는데 몰두하다가, 결과적으로 만든 지도가 제국의 영토를 정확하게 뒤덮어서, 나중에는 사람들이 그곳이 지도 위인 줄도 모른 채로 살았다는 “보르헤스의 우화”를 연상케 할 뿐이다.10) 부산시립미술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부산이자 미술이자 미술관 그자체이다. 미술을 품기에 미술관은 얼마나 비좁은가! 이것이 미술관이 맞이한 열 번째 해의 상황이었다. 비겁했지만 솔직하고 용감했던 때. 허무맹랑하던 때. 연구-큐레이팅-기획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다시 10년이 흘러,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모던·혼성 1928~1938》 그리고 《피란수도 부산_절망 속에 핀 꽃》이 열린다. 전시의 서사가 어떠했느냐를 떠나서, 왜냐면 내가 서두에서 ‘어떻게 아직도 이런 수사를 쓸 수 있냐며 아연실색’했다고 말했기 때문인데, 솔직히 이건 사랑이 깊으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낭만 같은 것이니 일단은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 그것과 별개로, 10년 전과 달리 진전이 생산이 나타났다. 미술관 바깥으로 향하며 비-미술적이던 것을 끌어안아 미술화시키며 부산-전시를 연장하던 제스처와는 달리.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이라며 모든 것을 택하다가 주저앉던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아직-어쩌면-여전히-가능함의 새로움을 선보였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게 2018년의 부산시립미술관이었다. 이 전시들은 미술관에서의 연구가 어떻게 작동되고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일단 역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전시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한 그림을 벽에 걸 때, 이제 그 벽 주변에는 그림의 내부적인 조형논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중요하다), 그 시기가 어떠했던 것인지를 보다 입체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말들이 붙었다. 지하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미술정보센터의 자료가 이제 본격적으로, 큰 비중으로 위층의 밝은 공간에 놓였다. 작가에 대한 기준도 당시 거주 했던 일본인의 인명과 그들의 드로잉을 제시하는 등 보다 풍성해졌다. 부산에 대한 범주 역시 창원과 진주 등 경남지역으로 넓혀 보면서 실질적인 문화예술권역으로의 지역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시도록에는 전시의 기획과정에 참여한 연구자나 전문인력들의 텍스트가 수록되면서, 어떤 과정으로 전시의 내용이 구성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살펴볼 수도 있게 되었다. 미술관 바깥으로의 움직임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최대한 찾아 나서려고 할 때였다. 관계 기관과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기억을 가진 자들의 구술과 그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문서들이 활용되기 시작한다 (이전 시기에 개최된 적 있는 《도큐멘타 부산》 등과 같은 전시사례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아닌 것들이 미술로 안착되며 미술-성을 획득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좋은 사례가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나는 오늘 자고 일어나 맞는 내일에는 그간의 미술과는 단절적인 방식의 반(anti)-미술적인 것의 미술적 안착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또 다음날에 생각을 번복하겠지만…….)
여기에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두 가지다. 첫째, 이와 같은 방식, 즉 연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미술관은 지속성 있게 담보할 수 있는가? 둘째, 연구가 너무 깊어져 사랑이 깊어진 나머지, 혹은 대중 일반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적인 이유 때문에, 지나친 낭만화와 콘텐츠화를 조심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가 충실히 고려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2년 전, 대구미술관에 갔다가 10주년 기념전시 《첫 번째 10년》를 보고 돌아오던 때, 일기장에다가 이렇게 썼다. “내용에 따라 디자인 할 것, 인포그래픽 과잉이 전시를 ‘카드뉴스’ 보는 것처럼 만드는데, 그게 적절한 방법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은, 전시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시민-대중에 대한 접근성, 친근함이 먼저 있어서 전시가 그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전시의 내용에 따라 개방성, 친밀함을 어느 부분에서 마련해야 할지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음. 10년 된 미술관 인계 받으러 온 관계자가 되어서 발표 듣고 온 것 같네”라고. 내가 조심하길 당부하는 지나친 콘텐츠화는 연구가 충분히 보장되는 때에 그나마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개관 25주년을 맞아 이제 기나긴 리노베이션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건물에 쓰일 돈을 생각하면 솔직히 앞으로 좋은 전시 만드는 연구력에 먼저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지만 (로또를 주마다 한 장씩 사는데 언젠간 당첨 되면 당첨금 일부를 기부(?)한 다음에, 김남배 연구를 위한 하와이 해외연수 자금으로 쓰이게 하고 싶다. 미국 간 김에 말년을 그곳에서 보낸 다른 작가들도 더 조사하고. 들이마셔야 할 강물은 여전히 범람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물론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는 학예사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나는 도대체 언제 당첨되는지 모르겠고. 친구들은 당첨되면 나보고 직접 가라고 하지만,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애초에 이런 것이야 말로 미술관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생각해보면 사실 이미 했을 것도 같다), 리노베이션 기간 동안 전시가 오픈하진 않을 터이니 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나마 앞으로의 전시를 위한 연구에 충분히 쓰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제언 같은 걸로 글을 맺어야 할 것 같아서 급 마무리).
4.
지역을 전시로 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일이냐면, 이것은 아주 몇 년 전에, 내가 큐레이터로 일을 하거나, 미술 및 전시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심 속에서 지내던 날에, 《광주시립미술관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리즈 전시를 도록으로나마 보고 싶어서, 광주시립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다가 연결된 학예연구사에게, 내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도록을 달라고 해야 하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질 않아서, 우왕좌왕하다가 대학원생이고 논문 준비 중이라고 말한 일화에 잘 담겨있다.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나는 대학원생이었던 적이 없고, 준비하고 있던 논문 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 즉 거짓말 쳤단 것이다. (당시 도록 보내주신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 분에게는 여기서 갑자기 사실을 고하게 되어 죄송하네요).
[지역→전시→지역](지역을 연구해 전시로 선보인다는 일종의 표식이다)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확보할 수 있는 정당성이란, 애당초 명징한 언어로 구성되지도 않고, 어떤 측면에선 떳떳 당당할 수가 없다는 뜻의 일화이다. 그러니 나처럼 이걸 인정 못하지 말고,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말고, 이글을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끊임없이 엮어내며 그 의미를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미술-지역-미술-전시. 이 마디-마디-에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 경제적인 것, 일상적인 것, 도시적인 것, 나아가 정치적인 것까지도 투여하라 (소장품전 《모든 것을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전시는 학자·학교·지식을 미술관 안으로 끌고 들어와 미술화 시킨 게 아니라, 미술관 ‘안에서’ 미술로 앎을 습득하게 하는 것에 성공했으니). 그리고 뭣보다 내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무어라 말한들, 미술관은 우리-여럿의 욕망이 투영되어 뒤섞이는 공간인 만큼, 부산항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면, 그게 갑자기 뭔 소리가 덧붙여지고, 끝이 없는 시작을 하게 됐다고 말하면, 끝 좀 내라고 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로 말해질 수 있는 도시/로컬리티라는 것이 있다면 이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나타날 것이니, 우리는 이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로컬리티의 개념이 지리학 영역에서도 논쟁적이었던 만큼, 미술에서의 로컬리티를 말한다면, 지리학에서 그 논쟁이 멈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술관 건물이 리노베이션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 1) 박솔뫼·안은별·이상우, 「0시 0시+ 7시」 5회, 『릿터』 35호, 민음사, 2022, 87쪽. 인용한 부분은 안은별의 텍스트이며 다음과 같다, 강조는 인용자: “(...) 이런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속에 세키 같은 존재가 자란다. 아니 거울로서 나타난다. 강을 알기 위해 강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모든 강물을 다 마셔 볼 기세로 책의 요새를 쌓고 그 안으로 잠수하는 사람의 모습이. 강은 찢을 수 없다. 그러나 조사하고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려 발표한다는 것은 마치 강처럼 찢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지점에서 찢고 그것을 다시 이어붙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실은 가만히 앉아 도망을 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변호하기도 했으며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속 세키의 손을 붙잡고, 지금 당장 말을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찢을 수 없는 것을 찢고 묶을 수 없는 것을 한데 묶어 가면서도 무언가에 대해 가장 적절한 언어를 부여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책이 펼쳐져 있을 때, 세계는 완전하고 그것은 손에 붙잡힐 것처럼 보이지만, 책을 편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
- 2) 출처미상 (↑)
- 3) 부재, 결핍, 피해의식이라고 볼 수 있는 기저는 당시의 보도자료-신문기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시대를 맞아 지역작가를 최대한 수용, 부산미술의 특성을 대변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케 해 문화인프라의 부재 등으로 야기된 낙후된 부산미술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등의 서술이 담긴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전 <상> 부산미술 재조명전」, 『부산일보』, 1998.03.13. 이외에도 전시도록에 수록된 서문 격에 해당하는 텍스트 등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확인된다. “한국미술을 언급할 때 지역미술이 배제되는 곤혹스러움 (...) 서울 중심의 미술사나 자료에 한정된 우리 현대미술사 (...) 서울과 지역 사이의 현대와의 속도와 상황의 이질성 등이 사실 지역미술을 현대미술사에서 소외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부산미술재조명전』, 부산광역시립미술관, 1998, 별도 쪽수 없음. 사실 시계태엽을 더 앞으로 감아서, 이용길, 『가마골 꼴 아솜 누리: 부산미술계 반세기』, 낙동강보존회, 1993년 등에 언급된 ‘폄터’와 관련된 기사문을 서치하다보면, 미술관 뿐만이 아니라 문화회관 등과 같은 공공적 뮤지엄을 얼마나 깊게 염원했는지 알 수 있다, 결핍의 차원에서. (↑)
- 4) 게오르그 루카치, 반성완 역, 『소설의 이론』, 심설당, 1998, 29쪽. (↑)
- 5) 김남시, 「‘미술관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2022 월간 인미공 8월호 공백: 미술관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한국예술문화위원회, 2022, 12쪽. 김남시는 해당 원문에서 오늘날 미술관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더욱 집중하는데 (이 부정의 물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중요시하던 시기 혹은 경향성과 대비해서 탈-근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에 따라 미술관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 즉 “새로움”으로 채우고 있다는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개념을 경유하며, 휴양지, 놀이터, 부엌과 식탁, 교실, 투표장 등이 되어버린 미술관 세태에서, 외려 ‘이건희 컬렉션’ 같은 ‘긍정적 순응’을 거쳐 미술사에 안착된 전시, 다시 말해 오늘날 미술관 바깥에서는 경험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고요하고 관조적인 감상공간으로의 미술관 안이 다시금 주목받는 현상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며 ‘미술관은 무엇을 하지 않는지’ 탐색하는 것보다 ‘미술관을 미술관이게 하는 건 무엇일까’ 질문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본고 역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하는 주장을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개관전, 10주년 기념전시, 20주년 기념전시를 언급하면서, 부산미술에 대한 해명/해석 혹은 전시를 통한 부산의 로컬리티-정체성-브랜드 형성에 주목하려는 뮤지엄의 방법론이,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러한 결의 주장이 본문을 통해 충분히 표현되지 못할 수도 있을까봐 남겨둠. (↑)
- 6) 부산시립미술관 홈페이지 내에서는 공식적인 10주년 기념전을 《아트인부산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으로만 표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당시 발행된 부산시립미술관 관련 기사에서는 《부산미술 80년, 부산의 작가들》 역시 10주년 기념전시로 언급한다. 대표적인 기사로는 「10돌 시립미술관이 품은 ‘부산미술 80년’」, 『부산일보』, 2008.03.21.이 있다. (↑)
- 7) 임영주, 「부산을 담은 미술 ‘돌아왔다, 부산항에’」, 『경향신문』, 2008.05.29. (↑)
- 8) 출처 김준기, 「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을 위하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Art in Busan 2008』 ,부산시립미술관, 2008, 14쪽. 미상 (↑)
- 9) 유창우, 「부산시립미술관 10주년 전시회 “뭡니까, 이게”」, 『국제신문』, 2008.03.24. 이외에도 강선학, 「“출품작들은 왜 거기에 있지... 기획력 없이 구색만 맞춘 그곳에”」, 『국제신문』, 2008.03.24. 등을 참조할 것. (↑)
- 10) 진중권, 「진중권의 아이콘-보르헤스의 지도」, 『씨네21』, 2010.12.24. (↑)
진세영(공간 힘 큐레이터) 공간 힘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분열적이고 알쏭달쏭한 삶을 사는지라 매순간을 힘들고 고되게 보낸다. 그리고/그래서 그나마 큐레이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