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그 친구들

전시실에서

안대웅
2023년 하면 부산시립미술관으로서는 잊지 못할 전시가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이하 《무라카미 좀비》)로, 무라카미 개인의 이력에 비추었을 때도 유의미한 규모였지만, 미술관으로서도 야심 차긴 마찬가지였다. 그 대가로 충분치 않은 행정력으로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작가의 폭발적인 요구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로 인해서 여럿 무리수를 감당해야 했는데, 지금 와서는 쓸데없는 말이지만, 당시엔 도무지 이 전시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전시가 열렸다. 그때 무라카미의 심정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했던 오페르트를 바라보는 조선인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명품관도 아닌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도 사라진 마당에 한 전시실의 관람 인원을 제한해달라고 했다. 전시실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시 관리 인력을 요구했다. 학예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당시엔 미술관에 적을 두고 있었기에 《무라카미 좀비》와 함께 열리고 있던 소장품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간다》(이하 《모든 것은》)에 순환배치되었다. 그 후. 무라카미의 우려가 충분히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개점질주하며 작품에 달려드는 수많은 순진무구한 얼굴의 인파 앞에서 무라카미 작품의 반질반질한 텍스쳐는 정말로 취약한 것이었다. 강도 높은 인파 스트레스 때문에 주기적으로 관리요원은 비교적 한적한 《모든 것은》으로 순환배치되었다. 그러니까 무라카미 선생님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 그때 본 그 광경, 오늘날 가장 스펙터클한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가 동시에 열린 그 광경은 마치 미술관의 미래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금 함께, 여기에, 불시착한 모습과도 같았다. 두 개의 전시와 두 부류의 관객 《무라카미 좀비》는 잘 짜인 전시처럼 보였다. 무라카미의 세계관을 개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고, 몇 개의 간결한 키워드로 묶어 지금까지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일환인 전시답게 이우환과의 선불교적 연결 고리도 놓치지 않았다. 전시 아이덴티티부터 공간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거기다 전시장과 작품의 컨디션 역시 철통 보안이었다. 전시 그 자체가 팝의 일반적인 감각, 말하자면 무엇하나 빠지는 곳 없이 견실한 상품이었다. 무라카미의 회사 카이카이키키(怪怪奇奇)가 전시를 강박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도 배우는 점이 있었다. 그랬던 전시에서... 《무라카미 좀비》 전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을 꼽아보자면 이렇다. △인제책 안으로 핸드폰 넣지 마세요 △뒷걸음질 치지 마세요 △손가락으로 작품 가까이 가리키지 마세요 △작품 앞에서 한쪽 다리 들지 마세요 △아기 손을 잡고 관람해 주세요. 이상은 모두 사진 촬영과 관련된 제한이다. 개점질주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무라카미 좀비》 전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를 찾았다. “저기다!” 말과 함께 빈번히 관객은 핸드폰을 앞에 세우고 특정 작품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고선,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의 눈을 작품을 향해 직접 두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몇 차례 사진을 찍고선 곧바로 뒤돌아서서 마치 무라카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번갈아 가면서 이들은 사진을 찍었다. 그 일이 끝나면 다른 포토존을 찾아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과도한 행동을 하는 관객을 제재할 때면 자주 △무시하거나 △험한 인상을 짓거나 △화를 냈다. 기억하기로 《무라카미 좀비》는 일일 관람객을 2만 명으로 제한했다. 그런데 주말은 거의 예외 없이 2만 명이 미술관을 방문했다. 2만 명의 관객 대 16명의 운영요원 사이의 싸움이었다. 전시된 작품가액을 생각하면 저절로 부산시를 지킨다는 사명감까지 생겼지만, 스트레스도 그만큼 컸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종일 《무라카미 좀비》에서 일을 하긴 힘들었다. 운영요원으로서 피난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가 바로 《모든 것은》이었다. 베테랑 전시장 운영요원 선생님께서 《모든 것은》에서는 관람객이 얌전하니 입장객만 계수하면 된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것은》은 소장품 전시다. 이건희 컬렉션 열풍 덕분인지는 몰라도 소장품의 중요성이 예년에 비해선 많이 인지된 것 같지만, 여전히 이건희 석 자를 뺀 평범한 컬렉션 전시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전시된 소장품은 어차피 다른 작품과 매한가지로 나와 무관한 미지의 대상이다. 미술관에 관심이 있는 이는 소장품 전시에 매번 같은 작품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장품 전시는 학예사에게 어찌 됐든 잘해도 본전인 경우가 많다.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었지만 정말 《모든 것은》의 전시실은 한산했다. 미술관에는 전시가 있는지 모르는 관객도 많았다. 사실은 도통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무라카미 좀비》의 압도적인 대기 줄에 낙담하여 어슬렁거리다가 온 관객일 것이다. 특히 가족 단위가 많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장시간 대기줄을 서기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관객으로 한정하면 《무라카미 좀비》보다 《모든 것은》이 단연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생각에 이 관객 대부분 역시 《무라카미 좀비》의 관객 대부분과 별다를 것 없이 미술에 대한 선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가령 이들은 우신출과 양달석이 누구인지 모른다. <영가대>를 보면서 192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권장되었던 지방색이 무엇인지, 그것이 식민지 현실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도 별 관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영가대가 예전에 조선통신사가 해신제를 올리던 장소로 현재 범일동 일대 철로가 지나다니는 곳이 옛터이며 과거 식민지 시기 철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사실과 그것을 아련하게 보여주는 듯한 작품 <영가대>는 부산 사람들에게 할 말을 만들어 주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질문하려고 열심인 부모의 모습에서 《무라카미 좀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적극성을 느꼈다. 미술사란 무엇인가?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미술 작품이란 예술가가 조형 언어로 진리를 추구한 것이기에, 미술품 자체의 형식과 양식을 먼저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 역사학을 포함한 타 분야 학문을 보조적으로 이용하여 편년체로 기술한다.1) 이 정의는 미술관의 학예업무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은 일반적인 미술관 소장품전과 달랐고, 심지어 미술전 일반, 미술사 일반의 목적과도 동떨어져 있었다. 《모든 것은》의 연구 대상은 부산의 도시형성사다. 식민지 시기부터 부산이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해 가는 과정이 주요 서사로 다루어졌다. 해설이 담긴 패널에서 전시가 참고했다고 하는 각종 문헌 중 미술사학과 관련된 문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미술품은 역사를 위한 시각 보조 자료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에서 으레 주인공이었을 작가와 작품이 이 전시에서는 모두 역사 일반의 한 부분,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무라카미 좀비》와 《모든 것은》 두 전시 모두에서 마찬가지였다. 미술과 작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주지하다시피 《무라카미 좀비》의 관객은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았고 사진을 찍으러 왔다. 이들에게 정말로 작품이 중요하지 않은가? 작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이들이 무라카미가 너무 훌륭한 작가여서, 무라카미의 뛰어난 작품성에 감탄하고 싶어서, 작품을 실견하고 그 가까운 거리에서 소위 말하는 ‘아우라’를 체험하고 싶어서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들에겐 무엇이 중요할까? 무라카미라는 작가나 그의 작품보다는 《무라카미 좀비》라는 전시가 중요하다. 그의 작품이 비록 한없이 각자의 주목을 진중하게 요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전시를 광안리 불꽃축제 같은 행사의 반열에 놓고 생각해도 좋다. 여러분께서는 불꽃축제에서 어느 불꽃 장인이 만든 어떤 불꽃을 쏘는지 어떤 불꽃이 감탄할 만한지 일일이 알고 있는가? 도발적으로 쓰자면,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아도 전시를 보러 올 수 있다. 이런 변화된 관객성은 1967년에 「저자의 죽음」이 쓰였다고 하더라도 원본의 보존 및 전승과 한없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술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가령 전시해설 프로그램의 경우 도슨트 개인의 생각을 발설하는 일은 지금도 매우 터부시된다. 그럼에도 늦어도 1990년대 이후 미술을 주도하는 흐름이 개별 작품에서 큐레이팅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미술계 내부도 이런 관객성 변화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동시대 미술계에서는 큐레이팅이 작품의 개별적인 존재감을 어느 정도 삭감하고 있는지, 주어진 작품의 의미를 얼마만큼 파워풀하게 변형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큐레이팅이 이뤄낸 미술의 새로운 확장된 영역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은 이러한 큐레이팅의 강력한 수정주의를 낙관적으로 관찰하는 미술사학자 중 하나다. 모더니즘의 수정주의적 독해를 시도하는 작은 책에서 조슬릿은 이렇게 지적한다. 미술관은 “작품을 수장하기보단, 이미지를 생성한다.”2) 그에 따르면, 변화된 관객성은 두 가지 순간을 포함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가져오고(capturing), 두 번째 단계에서, 그것을 큐레이션(curation)한다. 그래서, 《무라카미 좀비》에서 작품을 보지 않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관람을 포기한 것이 전혀 아니다. 조슬릿에 따르면, 인증샷은 신용거래와 흡사하다. 나중에 SNS에서 큐레이션으로 보상하기 위한 어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전시 후기를 모니터링해 보면, 이들은 네이버 블로그이든 인스타그램이든 방문일 즉시 후기를 올리는 경우는 많이 관찰되지 않는다. 먼저 찍어 놓고, 여유가 있는 시간에 사진을 천천히 다시 보면서 기억을 상기시키며 어떤 이유에서건 사진을 선별하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전시 관람 후기글이 실제 관람일로부터 한 달 뒤에 올라오는 경우도, 심지어 전시가 끝난 시기에도 마치 방금 전시를 본 것처럼 올라오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덧붙여 《무라카미 좀비》의 후기 게시물을 보면 대부분 작품을 배경으로 깔고 인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진은 대동소이하지만, 작품의 형태를 따라하는 포즈 등 어떤 종류의 맥락이 없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가 팝문화로서 부족함이 없다.) 도판1) 사진 촬영 툴부터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스마트폰은 관람성의 사전/후 모든 과정에 간여한다. 스마트폰과 관객 사이의 사이버네틱한 이런 연결은 오래전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가 주창한 키노-아이(kino-eye)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베르토프에 따르면 키노-아이는 카메라와 연결된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인지적/신체적 한계를 초월해 새롭고 진정한 대상 세계에 가닿는 ‘기계 눈(mechanical eye)’이다.3) 관람성으로 돌아와, 20세기 초 베르토프 시대에 키노-아이는 영화관의 영사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독의 일인칭 단방향 비전이었다. 오늘날 이른바 스마트폰-아이(smartphone-eye)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기계 눈이 현전하는 곳은 네트워크로, 수많은 기계 눈이 포착하고 큐레이션하는 정보는, 베르토프의 경우처럼 천재적이거나 비져너리하진 않지만, 실로 다극적이며, 실시간, 다방향으로 흐른다. 새로운 기계 눈이 포획한 이미지-디지털 정보는, 네트워크 안에서, 큐레이팅에 따라 언제든 영원히 새롭게 순환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 동시에 주류적인 미술의 창작과 미술사, 미술관에 할당된 영역에 ‘변화하라’고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재개관한 뉴욕 모마의 주요 소장선 전시가 보여주는 다원성과 #Black Lives Matter 운동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것.) 작품-미술전과 관객-큐레이션 사이의 이런 미끄러짐이 《무라카미 좀비》와 스마트폰-아이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미술관의 소장품은 보통 미술사에서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 우선적으로 수집된 결과다. 소장품 전시 역시 그러한 기조에서 열린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표적인 전시로 부산시립미술관의 《영점》을 든다. 이 전시는 부산의 근현대미술사를 중앙 화단과의 비교를 통해 서사화했다. 연대기별로 대표작가의 대표작을 꺼내서 보여줬으며, 여기에 대한 해제 역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것으로 한정해서, 사실에 기반해 가치중립적으로 쓰였다. 사실 이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보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선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지금의 관람성에 대한 관심에 입각했을 때, 이 전시는 여타 미술관 전시와 비슷하다. 천재적인 작가와 우수한 작품이 있었고, 이것은 틀림없이 그대로 관객에게 하달되어야 한다. 모르면 꼼짝없이 무시당하거나 배우는 수밖에 없다. 반면 《모든 것은》에서 소장품 전시에 대한 이 모든 일반 사항은 생략되었다. 대신 작품을 둘러싼 일련의 사회사적 편린이 따로, 또 같이 배치되었다. 전시를 보러 온 가족은, 작품 앞에서, 작품을 보면서, 미술사의 관심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흐릿한 기억—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의 기억, 할머니, 증조 할머니, 혹은 관련된 공동체로부터 내려 온 어떤 시공간적 기억—을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그러한 지성적 노력을 기울였을 때, 작품은 미술관과 미술사가 보장한 자율적인 대상의 지위에서 멀찌감치 벗어난다—자율성 개념은 공동체와 역사로부터 벗어난 대상을 인정하는 데 알리바이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미술에게 서양미술은 항상 ‘자율적’으로 보였다는 말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도판2) 어쩌면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부모가 그렇게 기억했고 그 기억을 전승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사실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꼭 《무라카미 좀비》에서처럼, 관객이 떠올린 다양한 집합적 기억은 소장품의 제 의미를 역규정한다. 그렇게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관객이 고유의 제 역량을 발휘하는 순간, 이 사물은 비로소 왜 여기, 이 미술관에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지를 드러낸다. 특별히 《모든 것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관객의 능동성과 역량은 박물관과 역사로부터 구별되어 있는 특수 분야로서의 미술관과 미술사가 관객으로부터 어떠한 능력을 지속적으로 박탈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빈공간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다. 나서면서 전시실에서 운영요원 일을 하며 관찰했던 《무라카미 좀비》와 《모든 것은》은 모두 예외적인 전시였다. 그러고 보면 무라카미가 운영요원을 과도하게 배치해달라고 요구한 이유는 다른 한편에선 작품이 걸린 공간을 기어코 미술관이 아니라 포토존으로 만들리라는 강한 다짐처럼 여겨진다. 《모든 것은》 역시 소장품 전시임에도 미술작품을 지역의 역사의 편린에 불과한 한갓 일반 사물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계기를 통해 출현한 관객 역시 예외적이었다. 스마트폰-아이를 탑재한 관객은 《무라카미 좀비》의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포획하고 큐레이션하면서 네트워크 상에 흘렸는데, 이로서 작품은 강도 높게 변형되었으며 무라카미가 아무리 저작권에 민감하다고 해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반면 《모든 것은》의 관객이 미술품을 역사적 사물로 인식하는 순간 소장품은 지역 공동체가 쌓아온 기억의 집적체가 되었다. 조금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좀비》의 큐레이션이 네트워크상에 흐른다면, 《모든 것은》의 큐레이션의 경우 부산 시민 제 각각의 공동체적 계통 속에 흐른다고 할 수 있다. 미래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미래가 현재의 연장이라면, 분명히 오늘의 미술관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미술의 역사는 독점적인 것을 공통의 것으로 만드는 역사였다. 그런 시도는 달라진 매체 환경 속에서 《무라카미 좀비》처럼 나타날 수도 있고, 《모든 것은》에서처럼 미술의 특권적 지위를 버리고 지역의 소박한 삶과 동화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은 작품의 원저자가 바랐던 방식은 꼭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이 정말로 작가에 종속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진짜로 자율적 존재라면, 그 나름의 삶이 있을 수 있다. 꼭 그것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그렇다. 이쯤 해서 김재환 학예사가 다른 글에서 이미 했지만, 2022년의 프라하 정의를 한 번 다시 쓰고 싶다. 아이콤이 몹시 보수적인 기관이란 점에서 이 정의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박물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다. 박물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박물관은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4)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하라면 나 역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안대웅(포커스 회원) 주부가 되고 싶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