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그 친구들

미술관과 아카이브: 수집,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기

류혜민
<지난 2020년 7월, 부산시립미술관의 디지털 아카이브 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이 마침내 첫발을 뗄 수 있게 되었다며 사업 예산이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통과되었음을 알리는 기사가 보도되었다.1) 판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이용길(1938-2013)이 50여 년간 수집해 온 부산 미술 관련 자료를 기증받고, 2008년 미술정보센터를 개소한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의결된 예산은 1억 6천만 원 규모이고, 기사에서 강조하고 있는 ‘소장품자료관리팀’ 신설의 필요성 또한 현재 미술관에 ‘소장품자료연구팀’이 조직되어 있는 것을 보면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지속적인 예산 편성과 조직 신설까지 추진해 온 과정들은 부산시립미술관이 거둔 큰 성취라 할 수 있겠다.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해 국내에서 미술 기록의 수집과 보존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어떤 노력들이 있었을까? 국내 아카이브 사례들 부산시립미술관보다 앞서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공개하고 있는 국내 국공립미술관으로 백남준아트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비교해 볼 수 있다. 2008년에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의 아카이브는 작가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관련 자료를, 2013년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와 올해 4월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의 예술자료를 수집·보존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체계를 갖춘 곳이다. 아르코예술기록원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미술관과 운영 목적이 다른 기관이기에 함께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79년에 개관한 아르코예술기록원은 그 역사도 길고 수집한 자료도 방대하여 미술, 음악, 공연 등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분야를 두루 포괄하는 41만 5천여 건2)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데, 자료 수집과 더불어 원로 예술인들의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의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 대상으로 하며 건축, 종교, 의례, 생활문화 등 다양한 주제와 분야를 다룬다. 부산시립미술관처럼 자료의 대량 기증이 아카이브 설립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이하 미술아카이브)는 건립 과정에서 리드3)를 개발하고 자료의 소장자를 찾는 것에서부터 수집이 이뤄졌다. 2017년부터 매해 아카이브 수집을 해오면서 현재 22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고, 이중 자료의 정리와 기술이 완료된 8개 컬렉션을 디지털미술아카이브4)와 원본자료 열람 서비스를 통해 공개 중이다. 수집 사업은 내부 학예연구사가 연차별로 담당하는데 나는 2020년에 4개 컬렉션을 수집했고, 그중 하나가 대안공간 섬과 대안공간 반디의 자료였다.5) 이 글의 자리는 자료 수집을 담당하며 서울과 부산을 오갔던 경험에 빚져 온 것이기에 당시의 고민들을 다시 꺼내려고 한다. 아카이브 수집의 기준 미술비평가이자 번역가인 최민(1944~2018) 컬렉션으로 선보인 미술아카이브의 개관전이나 현재 진행 중인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김용익》처럼 자료 수집은 주로 작가나 이론가, 연구자 등 매개자가 생산하거나 수집한 자료가 대상이 된다. 반면 2020년도에는 특정 주제를 설정해서 당해에 수집할 아카이브 컬렉션을 선정하게 되었고, 논의 끝에 그 주제는 국내 대안공간으로 결정되었다. 기존에 수집해 온 자료가 작가 개인의 작품 활동이나 매개자 개인의 연구 활동을 조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있다면, 대안공간은 여러 작가와 기획자, 평론가가 모이는 미술계의 주요 행위자로서 미술아카이브의 기존 컬렉션을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는 주제 기획적 성격으로 추진된 수집이었다. 자료 수집의 큰 방향이 결정된 이후에도 여러 선행연구 검토와 조사가 필요했다. 우선 대안공간을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는데, 대안공간은 법률이나 조례와 같은 명확한 근거에 의해 설립·관리되지 않으므로 관련 연구보고서와 논문 등을 참고해서 범위를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국내에서 대안적인 가치를 표방하고 운영된 전시공간은 1999년 이전에도 있지만, 스스로를 ‘대안공간’으로 명명하고 공간의 이름에 기입한 곳은 대안공간 루프가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에 서울에서는 대안공간 풀, 사루비아 다방이 차례로 개관했고, 부산에서는 대안공간 섬이 그 시작을 알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또 한차례 선택이 필요했다. 대안공간이라는 내용적 범위와 1999년이라는 시간적 범위까지는 정해졌지만, 공간적 범위를 서울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부산에서의 활동을 포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또 다른 고민을 더해 주었다. 어쩌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이기에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미술에서 지역의 구분은 단순히 행정구역으로 나눠질 수 없는 문제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만 살펴보더라도 서울시라는 지역에 한정해서 작품을 소장하는 기준을 따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아카이브의 수집도 마찬가지여서 충남 공주에 작업실을 둔 임동식, 서울과 인천, 지금은 경기도 안성에 작업실을 둔 정정엽의 자료 수집을 이미 마친 상태였다. 출신 지역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 대다수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거나 단체전에 참여하기 마련이므로 서울이라는 공간적 범위는 실상 그 제약을 갖추기 어려운 사뭇 모순적인 범주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예술 실천에서 지역성이라는 특징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삶에서 매일 발로 딛고 직접 체험하는 구체적인 장소가 개인의 사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 고민은 더 깊어 갔다. 또한 결정적인 문제는 자료의 유일성에 관한 것이 였는데 물리적 위치가 한 곳일 수밖에 없는 원본자료가 서울에 보관되어 있다면, 부산에서 대안공간을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자나 학생이 서울까지 방문해야만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했다. 서울과 부산의 아카이브 연결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 섬과 대안공간 반디의 자료는 미술아카이브에 기증되었다. 결정적으로 자료의 원 소장자가 이곳에 자료가 보존되는 것에 동의를 해주었기 때문에 성사된 일이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서울과 부산에서의 대안공간 활동에 관한 비교연구를 하기에 자료가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될 것이고,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 지역의 활동에 관한 연구가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제도적으로는 부산시립미술관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대안공간 섬과 반디 아카이브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 더 나아가 원본자료는 서울에 있지만, 디지털화한 자료 이미지를 부산에서도 열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면? 지금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부산시립미술관과 그 ‘친구들’로서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이하 AAA)의 활동은 지역 간 아카이브를 연결하는 한 가지 시도로서 조명될 수 있다. 2000년에 설립된 비영리 기관인 AAA는 아시아 여러 국가의 현대미술 자료를 수집해왔고, 약 13만 9천여 건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간의 수집 덕분에 소실될 위험이 있었던 아시아 각국의 여러 자료들이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면 AAA의 자료 수집은 홍콩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아직 자료를 스스로 정리할 체계를 갖추기 전에 선제적으로 접근해 각국에서 자료를 소장할 기회를 박탈해버린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는 이유는 실상 아카이빙 해야 할 자료는 너무나 많은데 그것을 수행할 인력과 자본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AAA의 활동이 우려할 만큼 일방적이지도 부적절하지도 않기 때문일 테다. 또한 AAA는 소장 자료 중 7만 3천여 건의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온라인에 공개함으로써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고 어디서든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6) 물론 스캔한 이미지를 모니터로 확인하는 것은 실물자료를 열람하는 것과 같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국내 아카이브의 사례를 보더라도 자료의 이미지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이 아닌데, 이미지를 공개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등 여러 이슈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료를 보다 여러 이용자와 공유하는 것에 방점을 둔 기관의 방향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AAA가 온라인 아카이브를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는 홍콩과 중국을 넘어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여러 지역의 아카이브를 수집한 것에 대한 지역 간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였을지 추측해 본다. 어느 아카이브나 자신들의 컬렉션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보존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 수집은 바꿔 말하면 유일한 자료를 특정 기관이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갖는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대안공간 섬과 반디 자료를 수집하게 된 기회는 자료가 소장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아카이브의 연구 방법을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지역 간 자료 공유와 협력에 관한 고민은 미래에 더 많은 지역 미술관에서 아카이브를 수집, 보존하게 될 때 지금보다 더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아카이브는 영구적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을 뜻하지만 기록은 보존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성 박스에 담겨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지기보다는, 누군가의 손으로 먼지 쌓인 자료를 일일이 넘겨가며 살펴보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수반될 때 아카이브의 보존될 만한 가치는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 주류 역사를 의심하면서 아카이브에서 다른 역사를 써낸 아를레트 파르주는 “자료는 과거를 현재에 연결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7)고 말한다. 90년대 말, 2000년대 부산의 미술 현장을 연구하는 데에 이 자료들은 당시에 일어난 여러 전시와 사건들을 다시 발굴하고 구체화시켜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입체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소장한 자료를 연구자와 창작자에게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아카이브 기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큼이나 앞으로 중요한 과제로서 고민되어야 한다.

류혜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건립 과정에서 대안공간 자료를 수집했다. 현재는 박미나와 Sasa[44]의 2인전을 준비하며,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운영과 도서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