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미술의 사(史)적 의미에 대한 단상
신양희
형상미술에 대한 미술관의 연구와 전시
과거에 있던 미술을 재정의하는 일은 단순히 존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거나 그 사실을 나열하는 일이 될 수는 없다.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대의 상(相)을 그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을 독립적인 것으로만 놓아둔다면 더욱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술사적, 예술적 지식뿐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가 어떻게 예술에 반사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더욱이 시대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뿐 아니라 이를 꿰어낼 사상(思想) 즉, 이론적으로 일관할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그 당대의 물질적 생산과 그 사회적인 의식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이자 그 속에서 어떤 예술정신을 피어날 수 있었는가를 살피는 일이 될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개관 초기부터 부산 미술사를 정리하고 기술(記述)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와 전시1)를 해왔다. 그중 미술관에서 부산의 형상미술을 명시적으로 다루었던 전시는 《형상미술, 그 이후-형상, 민중, 일상》(2000), 《도큐멘타 부산Ⅲ 일상의 역사》(2007), 《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2021)이다. 전시의 소재적 방법론은 달랐지만 대체로 형상미술에 대한 해석의 지점은 유사했다. 2001년 전시는 80년대 한국미술사 내에서 부산의 형상미술이 가지고 있던 특수성을 90년대를 경유한 이후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재정의하고자 했으며, 2007년 전시는 80년대 부산미술이 가진 자생성과 역동성 아래 형상미술과 지역성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2021년 전시는 회고전 형식을 통해 80년대 등장한 ‘형상’에 초점을 두고 부산의 형상미술 작가들의 당대 작품을 총망라하면서 형상미술을 한국 미술사에서 정립하고자 시도했다.
80년대 부산의 형상미술을 다루고 있는 이와 같은 전시에서 아직 연구되지 않는 것은 작가들의 개별 작품 세계를 연구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이다. 형상미술에 대한 총괄적인 그림은 그러한 작업이 선행된 이후 좀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미술의 변혁
1980년대는 1970년대 민중 의식의 성장과 현실적 투쟁을 딛고 개화한 시기였다. 72년 유신헌법 이후에도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지속뿐 아니라 노동현장에서의 산발적인 노동쟁의와 투쟁 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한편 부마항쟁에 이은 80년대 광주사태와 같은 민간인에 대한 국가의 학살은 파쇼적 정권의 존립 근거의 부당성을 증거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군부독재의 지배에서도 민중은 숨죽이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예술의 관념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현실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자각으로 일어난 일련의 미술적 흐름을 민중미술이라 할 수 있고, 이 모든 미술은 민중의 투쟁과 저항에 호응하고 반응한 것이자 민중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길을 걷고자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80년대 미술의 장은 이런 의미에서 70년대 주류적 미술의 안온한 사고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70년대 서구 미술을 수용한 작가들은 기하 추상, 오브제 미술,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 다각도에서 매체적인 실험을 하였지만,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모노크롬 회화2)가 주류적인 미술 경향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들의 넓은 화면에는 현실과 사회가 도저히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미술 언어가 현실과 역사, 민중의 모습을 관찰하고 자기화하는 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식의 자각이자 예술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 대한 사유와 대상과의 일치를 어떤 식으로든 추구했던 일군의 예술가들의 화면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사회의 여러 모습이 온당히 그려질 수 있었다. 80년대 미술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미술이 서울과 광주를 중심으로 서서히 성장하는 동안 80년대 부산미술도 변화의 지점을 맞게 된다. 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80년대 중반 어느 정도의 운동성을 띠게 된 형상미술은 70년대 부산미술의 지배적인 조형 언어인 추상과는 다른 언어를 구사했다. 70년대 부산미술3)은 한국미술의 흐름 안에서 추상을 인식하고 있었고, 조형 언어의 쇄신을 위한 예술적인 정신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80년대 부산미술의 변화는 미술 내적인 반발이 작용했지만 실은 민중이 끌어낸 사회의 변화된 힘 속에서 새롭게 이뤄질 수 있었다. 즉 사회적 의식의 성장은 부산미술에서도 미술 내적인 조형에 대한 추구를 넘어서 예술의 장이 현실과 사회를 인식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형상미술 또한 민중의 운동성의 영향 아래 탄생한 민중미술의 아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형상미술이 그린 세계의 모습
형상미술에는 예술의 관념을 넘어서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당대의 사회적인 주체로 급부상한 민중의 모습이 적극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실존주의적이거나 해학적인 표현법으로 사회 제도 속에서 소외된 인간을 그리거나 집단의 감수성과 구별되는 개인의 삶과 환상의 차원을 다룬다.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이었던 80년대 이전 작업들에 비해서는 분명히 삶과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것은 특정한 장소나 현실의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다.”4)는 사실을 통해 사회와 관계 맺는 개인의 추상적인 자의식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형상미술은 민중미술이 가진 투명한 목적성과는 결이 다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민중미술로 분류될 수 없으면서 시대적 상황을 구상적 형상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직접적인 시사성을 띤 사건 보고서나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미술로서의 순수성을 지키는 경향의 작업들을 일컫는 것”과 더불어 “개별성과 특성, 상상력을 믿고 그것을 통해 삶을, 시대 상황을 미적 대상으로 삼고 작업했던 부류를 형상미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5)이라는 사후의 정의를 통해서도 형상미술이 민중미술의 집단적 정체성과 결을 달리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와 개인이 맺는 관계가 형상이라는 큰 모습을 띨 수 있었던 것도 시대적인 요청, 사회적인 흐름에 호응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의식이 추구했던 방향성이 협소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형상미술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결을 함께 하고, 분열될 수밖에 없는 개인성을 포착하였지만, 그 당시 사회적 의식이 도달했던 만큼의 성숙함을 내비치지 못했을 뿐이다. 모순된 사회 현실 안에서 온전할 수 없었던 주체로서의 개인은 미학적으로도 일그러지고 변형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고, 온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가 화해할 방법은 등장할 수 없었다. 예술가들은 현실의 불합리와 비틀어진 세계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직감했지만, 그 이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당대에 민중미술이 모색했지만 온전하게 찾을 수 없었던 사회와 개인의 통일의 어려움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와 민중은 더 나아갈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 1)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전에서 진행되었던 세 개의 전시 중 《부산미술재조명전: 집단활동으로 본 부산미술의 정체성》(1998)은 그런 자각의 일환이었다. 이후에도 미술관은 여러 모습의 부산미술과 그 역사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회화, 한국화, 조각 등 장르별 조형의 뿌리와 계보, 변화를 찾기 위한 《부산미술의 조형적 계보찾기Ⅰ-Ⅳ》(2001-2002), 김경을 시작으로 김종식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작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 《부산의 작고 작가》(2009-2018), 부산에 서양화가 도입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부산미술을 갖가지 사료를 바탕으로 재정리한 《도큐멘타 부산Ⅰ-Ⅲ》 등을 진행했으며, 개관 20주년을 맞아서는 《모던·혼성: 1928-1938》(2018), 《피란수도 부산: 절망 속에 핀 꽃》(2018), 《1960-70년대 부산미술 : 끝이 없는 시작》(2020), 《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2021)을 통해 한국 미술사와의 관계를 통해 부산미술을 확장하고자 시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의 발견》(2008-2015),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1999~) 등과 같은 연속 기획으로 동시대에 활동하는 부산의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도 주목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2022)에서는 부산미술을 부산이라는 지역사뿐 아니라 세계사를 관통하는 시선 아래 소장품이 갖는 의미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이와 같은 미술관의 기획들은 부산의 미술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것을 맥락화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 2) “모노크롬 회화로 불린 1970년대의 추상은 백색 혹은 절제된 무채색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대변하고, 무위의 반복적 행위로 내면의 수행을 강조”하는 모습을 띤다. 그 이면에는 “60년대 말 박정희 정부는 여러 문화예술제도를 정비하여 국가 주도적 민족주의 문화정책 하에 한국적인 것의 모색을 시대적 과제로 천명”하는 일이 선행되었다. 당시 백색회화를 주도하던 작가들에게 “추상으로 세계현대미술에 동참하면서 한국적인 것을 모색해야 한다는 양립적인 모토”가 있었고 “전후 한국미술에서 추상은 낙후된 한국미술을 극복하고 세계미술에 동참을 약속하는 현대적인 미술로 여겨졌으며 한국적 전통이나 동양적 사상에 찾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다. 권영진, 《1960-70년대 부산미술 : 끝이 없는 시작》 도록, 2020 (↑)
- 3) 60~70년대 부산미술은 자연주의 묘사나 재현 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 이념에 대한 도전의 시기였다. 조은정, 《1960-70년대 부산미술 : 끝이 없는 시작》 도록, 2020 (↑)
- 4) 조선령, 《도큐멘타 부산Ⅲ 일상의 역사》 도록, 2007 (↑)
- 5) 강선학, 《형상미술, 그 이후-형상, 민중, 일상》 도록, 2000 (↑)
신양희(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경성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화기획·행정·이론학과 석사과정에서 논문 「1980년대 이후 부산의 미술운동: 형상미술과 민중미술을 중심으로」(2012)를 썼다. 대안공간 반디 큐레이터, 미술문화잡지 《B-ART》 편집장, 경향 《아티클》 기자를 거쳐 2015년부터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