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그 친구들

미래과거를 위한 리노베이션 ㅡ 건물이 아닌, 미술관

권진
미래의 미술관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건물의 형태나 기능, 소장품 목록, 관람객 편의시설이나 기념품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어떤 움직임이 발생하는 공간이자 교환을 장려하는 제도로서의 미술관에 관한 생각이다. 많은 이들은 오늘날의 미술관이 역사적 예술의 보존서고에서 점차 실천을 장려하고, 담론을 생성하고, 새로운 배움과 경험의 장소로 변화함을 인지하고 있다. 2022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비판적 대화를 위한 민주적이고 포괄적이며 다성적인 공간’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정의를 개정하며, 인종, 민족, 이념, 종교, 기타 정체성의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다변화된 가치관을 주목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 세계 평등 및 지구적 복지에 기여를 목표’로 두어,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무형의 유산까지 포괄하는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정의나 가치관의 변화가 동아시아의 한국과 같은 지역에서 모두에게 친숙하고 당연시되지 않으며, 한국 내에서도 도시와 지역별로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복수의 근대, 혹은 여러 ‘시차’는 우리 현실의 조건이며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하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1909년 우리나라 최초의 이왕가박물관이 개관하였고, 한국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공간이자 제도는 외부에서 유입된 근대화의 출현을 상징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그리고 이후 급속도로 빠르게 전개된 산업화와 국제화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 미술관의 여러 ‘사용자’들은 저마다의 가치관과 경험에 국한된 시선을 통해 미술관을 인지한다. 2018년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모여 오늘날의 미술관 제도가 교육, 매개와 해석의 장으로 기능하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미술관의 구조, 공간, 비평적 실천에 관한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한 공동 연구1)를 진행하였다. 책은 연구의 시작점으로 ‘관계’를 중심에 두는데, 그중에서도 미술관의 ‘관람객’은 이미 정립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자’에서 점차 미술관을 기능하게 하고, 자극하고, 영감이 되고, 배움까지 제공하는 능동적 ‘유권자’로서 변화함을 주목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미술관과 ‘공공’이 수평으로 맺는 작용의 다른 말이며, 미술관마다 ‘공공’이 되는 구체적인 커뮤니티나 사회의 정체가 이 관계의 구체성을 그리는 핵심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의 연구에서 가깝게 보아야 할 것은 그것의 방법론이나 제공된 사례들을 우리에게 직접 대입하는 일차원적 적용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어 온 우리의 ‘제도’와 ‘공공’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 새로운 차원의 ‘해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미술관이 정말 ‘제도’로서 기능하는데 생략되었던 ‘기본’을 찾아 메꾸고, 동시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여러 차원의 관계들과 협상하고 관계 맺음을 확장해나가는, 그러면서 두 항을 지속해서 교차시키는 ‘이중적 이행’의 방식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8년 별도의 전시실 없이 경희궁 부지 내에 있었던 옛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개관하였다. 빠른 속도로 건립이 추진되었기에, 전문인 관장이나 학예사의 부재는 물론, 수집, 연구, 기획과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서울시 문화국 체계에서 시의 소장품을 관리하고 시민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기능에 충실했던 것으로 파악된다.2) 별도의 전시관 없이 일종의 관료적 프로그래밍으로만 존재했던 서울시립미술관은 1995년 ‘미술관 운영관’으로 조직을 개편하며 수도 서울의 600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가설했던 임시 전시장 ‘서울 정도 600년 기념관’의 관리 주체가 된다. 당시의 미술관은 이곳에서 미술 협회나 단체들을 위한 전시를 개최하고 운영하는 한편,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당대의 새로운 매체 ‘미디어’를 개념적으로 사유하고, 변화하는 도시와 미술의 실체를 주목했던 연례전 《도시와 영상》을 3차례 조직하였다. 이 전시는 미디어에 관한 개념적 접근, 그리고 동시대 미술의 실천과 실험성을 앞서 사유하였고, 2000년부터는 비엔날레라는 형태로 전환, 같은 비전을 전개해 온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전신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1995년까지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개보수하여 서소문본관을 개관한 시기는 2002년이다. 건물의 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원인 평리원(한성재판소)이 있었던 자리로, 미술관은 일제가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은 건물의 정면 출입구 부분만 국가 유산으로 보존, 복원하고, 그 외 부분은 옛 건물의 건축적 형식만 가져와 전면을 개보수한 후 사용하게 된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은 낙후된 물리적 공간을 다시 개보수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백남준의 <서울랩소디>(2002)는 2001년 서울시 커미션으로 제작되어 서소문본관의 개관에 맞춰 첫선을 보이게 된다. 3개 층 높이의 건물 천장에서 지상까지 자연 채광이 들어오고,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과 복도가 한눈에 보이는 미술관의 로비 공간은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에게 각인된 미술관의 대표적인 인상이다.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는 미술관 학예사나 외부 기획자들에게도 넘어야 할 관문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술관의 로비 한쪽에 10m 너비의 벽면을 약 300여 개의 모니터로 채우며 영구 설치된 장소 특정적 작품 <서울랩소디>의 물리적이고 상징적인 존재감, 그리고 사실상 미술관 전시의 감상이 이 작품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로비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작품의 위상은 비단 백남준이라는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나 그가 한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이나 공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울랩소디>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를 그리는 중앙부와 양쪽 정사각형으로 펼쳐진 주변부로 구분되어 있고, 양 주변부 중앙에는 크기가 다른 모니터가 중심점을 형성하며 주변 모니터들이 그 주변을 둥글게 회전하는 것만 같은 역동성을 만든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은 서소문본관을 개관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상징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작품은 단종된 구형 모니터를 유지, 보수하는데 어려움으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모니터를 꺼둔 채, 전면 수복을 위한 단계적 연구와 준비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적마다 잠깐씩 비디오가 켜지고, 그러면 이 작품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전히 젊고, 활기차고, 미래지향적인 영상을 그려낸다. 발췌, 퍼포먼스, 촬영 등 다양한 푸티지의 활용, 동과 서의 문명적 연결, 팝과 전통을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런스, 그리고 뮤지컬하게 편집된 이미지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어떤 시대적 환경과 기대감 속에서 태동했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의 미술관이 향후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미디어 아트의 물리적인 한계를 갱신시켜 나가는데 여러 연구와 생각이 교환되고, 제도적인 절차와 구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역설한다.3)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의 미래는 멀리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술관이 직면한 여러 상황이나 문제에 이미 내재한다고 바꿔 말해볼 수 있다. 팬데믹을 지나며 세계의 많은 미술관은 그동안 미술관에서 벌어졌던 물리적인 교류나 움직임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물리적인 봉쇄를 넘어서 서로 연결되기 위해 재빠른 기술의 흡수를 진행하게 된다. 많은 미술관이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 가상 세계에서 전시를 감상하고, 메타버스의 캐릭터에게 행위와 목소리를 투영했다. 하지만 이 시기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대체한 우리의 물리적 일상이 아니라, 미술관이 그동안 무엇을 연결하고 우리의 어떤 ‘감각’을 촉매했었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온라인에서 소통과 연결성의 한계를 느끼고, 또 단절을 계기로 그동안 미술관에서 벌어졌던 연결의 ‘질적인 문제’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기술을 통해 거의 동시적인 정보를 주고받고, 세계 전역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통해 보편화된 가치를 만들어가며 ‘글로벌’이라고 믿어왔던 세계로의 접속이 잠깐 유보되면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자본의 양극화, 인간의 이기주의, 소외된 사회 계층의 연약함, 연대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서로를 연결한다고 생각했던 ‘글로벌’이라는 개념이 정작 각자가 살아가는 지역 현실과 ‘인지적으로’ 단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4) 이 시기를 지나오며, 그리고 여전히 지나가며 알게된 것들이 결국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인 지점을 재고해보는 것이다.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온라인으로 전해지는 정보나 데이터와는 다른 ‘감각’의 차원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미술관을 형성하는 주체와 그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애초에 미술관이 만들어진 의도, 미술관에서 보존되고 연구되는 작품과 지식의 주체, 미술관에서 재현하는 동시대의 모습, 그리고 미술관이라는 제도이자 인프라가 반영하는 ‘목소리’를 살펴보면서 다음을 그려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을 포함한 여러 미술관의 서사를 만들어낸 ‘목소리’는 미술관 연대기에 기록된 사람들이고, 미술사에 등재된 사람들이다. 미술관의 결정권자이며 미술사 정전에 기록된 사람들이 생겨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미술관을 찾지 않거나 혹은 찾기 어려운 자들을 칭하는 ‘비관람객’이라는 개념이 한편으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불평등으로 인한 ‘배제된 자들’을 호환한다는 비판적 성찰5)을 떠올려보면, 오늘날의 미술관을 정의하는 평등, 복지, 정의의 관념은 물론, 앞서 언급된 ‘사용자’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미술관들은 소수 공동체나 소외된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왔지만, 많은 경우 단순한 참여를 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엄격히 말해 모든 프로그램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양적 확대만이 정책적 성과로 종속되고, 이러한 단순 지표가 미술관의 예산과 운영 방향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문화적 평등과 정의로 귀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미술관의 공적 역할이 사회 제도에서 빠진 부분을 대체한다는 식의 단순하고 기능적인 논리로 치환될 수 없기에,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지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향유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미술관에서 공공의 가치를 위해 어떤 예술이 필요한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동시대 미술이 과연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질문 말이다. 예술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었지만, 동시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대 사회에 관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전환적 계기이다. 동시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노출되는 각종 정보, 데이터, 문화, 오락, 사회정치적인 상황을 조건 없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맥락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인지와 감각이 열리는 순간들이 바로 전환의 지점들일 것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가 개정한 정의에서 말하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비판적 대화를 위한 다성적인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은, 우리 시대의 여러 지역에서 겪었고, 또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각종 재난과 재앙을 질문하고, 탐색하고, 고찰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술사가 할 포스터는 최근 발표한 책6)에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정치와 기술의 시대에서 미술의 제도와 비평이 지극히 ‘허약’해진 오늘날을 직시하며, 작금의 분열적인 상황을 또 다른 ‘기회’로 삼기 위한 비평적 노력을 보여준다. 책에서 말하는 ‘기회’는 팬데믹 전후로 불거진 월가 점령 운동, 흑인 인권운동, 미투운동을 통해 대학과 미술관이 이 사회에 거의 유일하게 남겨진 ‘공론장’으로서의 기능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공론장을 채우는 ‘목소리’는 작품과 올바른 제도를 통해 발현되고, 체현된다. 이 책은 동시대 미술에서 다양한 문화정치, 억압과 외상, 키치, 윤리성, 복제와 같은 미학적 개념과 상징질서가 새롭게 도래하는 역사와 경제적 상황에서 과거와 같고 또 다르게 작동하는 방식, 이렇게 변화한 상황이 제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기술 환경이 변화시킨 ‘재현’과 ‘매체’를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적 가치들이 결국 교환되고 공유재로 전환되는 지점의 작용, 정동affect의 영역을 언급한다. 비록 오늘날 ‘정동의 작용’이 기술감시와 세계화를 통해 보편화 혹은 식민화되는 문제점이 있더라도, 동시대 이념에서 이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다루는 곳에서 결국 공동체가 만나고 연결되는 공간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공간’은 개념적이면서 동시에 물리적이다. 더군다나 동시대 미술에서 다루는 다양한 매체, 유무형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미술관 공간이란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상향을 그리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가까운 과거와 주변에 있었던 여러 시도를 상기해볼 수 있겠다. 미술이 보이지 않는 외장, 작품의 유기적인 관계 맺음이나 주의 깊은 배치를 방해하고 스펙터클한 규모만을 조장하는 공간의 구획,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의 연결성이 부재하거나, 외부 환경과 내부의 관계성이 고려되지 않은, 미술관 아닌, 건물들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관은 화이트박스, 블랙박스, 그레이박스, 오디토리움, 교육실, 편의시설, 휴게 장소와 같은 세부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기능을 가진 공간과 공간의 연결, 그리고 장소 특정적 환경이나 과거와의 관계성을 통해 문화의 연속성과 축적이 생겨나고, 나아가 공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주변의 덕수궁, 정동극장, 정동교회, 배재학당, 구 러시아공사관을 포함하는 근대 역사의 문화 벨트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미술관은 전면부의 근대 건축 유산은 물론이고, 공간마다 각기 다른 재료 - 나무 타일 바닥, 로비의 대리석 바닥재, 마당의 돌 바닥재, 벽돌 마감, 나무 손잡이, 그리고 다양한 층고와 동선을 가지고 있어, 과거와 현재, 내부와 외부를 잇는 연결성이 이미 존재한다. 반면, 빗물이 새고, 전시실 내 방음이 취약하고, 원창을 벽으로 막아 자연광이 막혀있고, 조명 트랙이 불규칙하고, 공간의 흐름과 관계없는 기둥, 고르지 않은 바닥처럼 미술관에서의 활동을 제한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기에 개보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인포데스크, 교육실, 자료실,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미래과거를 위한 건물이 아닌, 미래과거를 위한 미술관은, 건축 뒤에 찾아오는, 혹은 건물이 완성되고 덧붙여지는 오브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미술관답게 지어나가는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아래서 위로 향한 ‘과정 만들기’에 있을 것이다.7)

권진(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권진은 공공성을 둘러싼 미술의 발언과 접근방식에 대한 논의, 그리고 언어이자 미디어로서 미술에 관심을 두고 관련한 일들을 해왔다. 2016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재직하며 한국의 1세대 타이포그래퍼 안상수 개인전 《날개.파티》(2017), 남미현대미술전 《미래과거를 위한 일》(2017-2018), 중동현대미술전 《고향》(2019-2020), 작가 이불의 초기 활동에 관한 기록전 《이불-시작》(2021)을 기획했다. 관련한 출판물로 『안상수』(서울시립미술관, 2017), 『미래과거를 위한 일』(서울시립미술관, 2021), 『이불-시작』(서울시립미술관, 2021), 『고향-재방문』(서울시립미술관, 2021)이 있다. 2021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비엔날레 프로젝트 디렉터로 근무하며 비엔날레 자료집 『1996-2022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보고서』(서울시립미술관, 2022)를 출간하고, 11회와 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개막, 운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