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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작가명
양달석
작품명
어촌
제작년도
1957년
재료
종이에 담채
규격
25.3×44.5cm
부문
회화
관리번호
97회-036

작품설명

양달석[梁達錫, Yang Dalsuk, 호 여산(黎山), 1908-1984]은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부산 근대미술을 개척한 1세대 서양화가이다. 통영공립보통학교 재학 시절 《남선 소년소녀문예전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하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이후 1923년 통영사립강습소와 1926년 진주농업학교를 거쳐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로 입선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수학하였다. 가정사와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한 후에는 독학으로 화업을 이어가며 1930-194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와 《일본 독립미술협회전》(일본, 도쿄) 등에서 다수 입선하였고, 1940년 《부산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최고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1942년 통영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1940년 결성된 부산 최초 서양화 동인 ‘춘광회’ 전시에 서성찬, 김남배, 우신출 등과 함께 참여하여 지역 미술 운동을 이끌었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해군 종군 화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한국신미술가협회’, ‘넝쿨회’ 창립회원, ‘후기회’ 등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며, 1969년에는 부산 미술계를 위한 상설 화랑인 수운화랑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서울), 1974-198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로 참여하였다. 1946-1955년 부산미술협회(전신 부산미술가동맹) 초대 회장과 《부산미술협회전》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이후 부산 화단의 형성과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932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네 차례 입선하였고, 1962년 제1회 경상남도문화상을, 1976년에는 눌원향토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양달석은 향토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화가이다. ‘소와 목동의 화가’로 알려진 그는 소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목가적 농촌 풍경을 즐겨 그렸으며, 밝고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농사일과 소치는 일을 도우며 성장한 작가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산과 들, 초목과 바람 등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었고, 이러한 성장 경험은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와 목동, 그리고 농촌 생활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양달석은 평화로운 자연과 순박한 인물을 통해 척박하고 혼란한 현실과 대비되는 이상향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이를 두고 “내 슬픈 날의 자화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1950년대 전후의 작품에는 회색빛의 어두운 농촌 풍경과 무표정한 농민의 모습, 그리고 〈판자촌〉(1950)과 같이 전쟁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이 담겨 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묵직한 분위기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반영한다. 1950년대 이후에는 소와 목동을 주요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제작하며, 밝은 색채의 화면과 둥글게 단순화된 인물, 대상의 대담한 생략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동심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전원 풍경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그가 꿈꾸었던 이상향을 보여준다. 또한 민족성과 향토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는 1960년대 이후 한지와 세장형 화면, 병풍 형식 등을 활용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하였다.

〈어촌〉(1957)은 바닷가 인근 어촌마을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낙엽이 물든 가을날을 배경으로 그물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부의 일상을 표현하였다. 화면 속 섬과 나무, 인물, 가옥 등은 빠른 필치로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청색과 황색의 강한 보색 대비가 특징적인 수채화 계열의 작품이다. 한적한 농촌과 어촌의 풍경은 양달석이 즐겨 그렸던 주제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농가〉(1963)에서도 황색과 청색을 중심으로 한 향토적 정서와 색채 감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