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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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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번호 PA-3009
  • 작가 조동벽
  • 제작년도 1955
  • 작품규격 124.8*91
  • 재료
작품설명
조동벽(趙東壁, 1920-1978)은 비옥한 토지를 찾아 만주로 이주한 함경북도 출신의 부농 조두용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만주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후 일본 동경 유학길에 올랐고, 동경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뜻한 바대로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과에 진학하여 서양화법을 익혀나갔다. 일본 유학 당시 신일본화 운동의 하나인 독립미술협회의 공모전에 두 차례 입선하며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941년 졸업한 뒤 귀향하여 만주 공립사도학교, 금화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인천으로 내려와 인천공립공업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수용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 포로수용소에서 사람들을 그린 드로잉이 남아 있다. 1953년 휴전 협정과 더불어 추진된 반공포로석방사건 때 풀려나면서 조동벽은 거제도와 가까운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부산 사범학교를 거쳐 부산교육대학교의 전신인 부산사범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1978년 작고하기 전까지 본격적인 후학 양성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또한 1958년 우신출, 서성찬, 김원갑, 임호, 김윤민, 김원, 나건파, 김남배, 허민 등 부산에서 활동하는 화가들과 함께 《광복절 건국10주년 경축미전》에 참여하였고, 1959년 송혜수, 양달석과 함께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독립작가 3인전》을 개최하며 부산 화단 1세대로 입지를 다져 나갔다. 1962년 경남공보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20점의 추상작품을 선보였고 1973년에는 미국 찰스톤썬라이즈미술관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풍경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경남미술연구회, 후기회 등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화단과 지속적으로 교류하였으며, 1978년 지병인 고혈압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후기전, 부산미협전 등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1980년 가족과 제자들에 의해 광복동 로타리화랑에서 추모전이 열렸다.
작품의 정확한 제작 시기나 명확한 출품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부족하지만, 짐작컨대 초기에 발표한 작품들은 대체로 누드 군상이다. 연도와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1955년 작품 <비무선아>(124.8×91cm, 캔버스에 유채, 1955년)는 조동벽의 초기 누드 군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서양의 여신을 연상케 하는 4명의 여인 누드는 파란 배경을 뒤로하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형상을 하고 있다. 탄탄한 근육과 살집, 인위적인 포즈와 인체 비례, 비현실적인 배경들에서 서양화 학습기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이 누드 군상은 신비로운 대상에 대한 동양적인 해석을 가미하여 ‘비무선아’와 같은 명제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ㆍ담당부서 :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 (051-740-4249)
ㆍ업데이트 :
2017-03-08 1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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